익산 KTX 시대의 사회사적 의미
익산 KTX 시대의 사회사적 의미
  • 원도연
  • 승인 2015.03.2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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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전주의 인구는 16만6천명이었다. 그 해에 익산의 인구는 13만5천명이었다. 익산의 도시규모가 전주에 버금가게 성장한 것은 국가 기간 교통망인 호남선이 1912년 익산을 지나면서부터였다. 전주에 철도가 지나는 것을 반대했던 전주의 유지들은 호남선이 개통된 이후 “아뿔싸! 저렇게 리(利)하고 편(便)한 것을 우리 손으로 떨어버렸다니….”하고 개탄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 뒤로 전라선이 개통된 것은 1936년 일이니 실제로 익산의 근대 프로젝트는 매우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고 같은 해에 이리-군산간 지선이 열리고, 1914년 이리-전주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익산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군산이 일본의 주도에 의해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전주가 행정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은 데 반해 익산은 전라도 일대 육상교통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전국적인 고속도로망이 확충되고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가 형성되기 전까지 익산은 철도교통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도시발전에서 교통의 중심이라는 의미는 곧 그 도시가 새로운 문물과 문화의 중심이라는 뜻이 된다. 하루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속에서 도시는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통 중심도시들은 단순한 교통의 거점을 넘어 크게는 새로운 문화사조를 이끌고 작게는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기 마련이다.

 익산은 그런 점에서 1980년대까지 전북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였다. 익산역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아침저녁으로 통학열차가 뿜어내는 젊음의 열기가 도시 전체를 설레게 했다. 산업적으로도 익산은 활기가 넘쳤다. 1970년 정부가 마산과 함께 유일하게 단일 보세구역으로 지정한 수출자유지역이 있었고 이곳에 외국 기업들이 촘촘하게 입주하면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았다. 익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산업의 중심이었고 귀금속산업은 한때 세계시장의 넘버원이기도 했다.

 원광대는 지역대학이면서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특별한 대학이었다. 익산역을 중심으로 도심에는 강남에서 스타일을 직수입한 듯한 멋진 카페와 백화점과 서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연히 도심에는 흥겨운 밤 문화도 살아있었다. 전성기 때의 익산은 말하자면 새로움과 낯설음의 도시였다. 가장 먼저 새로움을 맛보고 그 낯설음을 도시의 문화로 바꿔주는 진취성과 개방성이 익산의 도시적 특성이었다.

 그러나 익산은 1990년대 이후 기나긴 침체기에 들어섰다. 고속도로망이 전국에 깔리고 중심적인 교통수단이 철도에서 고속도로로 옮겨가면서 익산의 도심은 시들해졌다. 때마침 찾아온 경제위기로 산업기반이 무너지면서 도시는 우울해졌다. 도시가 우울해지면서 익산의 개방성과 진취성도 같이 무뎌져 갔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에는 철도의 쇠락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철도교통의 혁명이라고 불러 마땅한 KTX 시대가 익산을 중심으로 열리게 된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익산이 KTX를 중심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도권으로의 빨대 효과가 염려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러한 현상적인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익산이 본래 가지고 있던 진취성과 개방성을 되찾는 것이다. 포디즘적 생산방식이 단지 생산현장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원리를 변화시킨 것처럼 KTX 역시 교통수단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 것이다.

 그러나 KTX의 역세권은 과거와 같이 익산의 구도심으로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도시는 이미 광역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주와 군산은 익산이 경쟁해야 할 도시가 아니라 협력하고 연대해야 할 도시가 되었다. 군산을 중심으로 한 신산업과 새만금 개발, 전주를 중심으로 한 행정과 문화의 도시발전이 익산의 KTX가 연계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그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KTX 시대 익산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상상력 넘치는 도전은 이제 다시 시작되고 있다.

 원도연<원광대 교수/문화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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