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특별법을 아십니까?
전공의 특별법을 아십니까?
  • 김형준
  • 승인 2015.03.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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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 년 전 전공의 시절의 일이다. 며칠째 하루 서너 시간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날따라 응급 상황의 연속으로 내리 두 끼를 먹지 못한 상태에서 온갖 일들을 해결하러 뛰어다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30년 살아온 내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인 것 같다고……. 그리고 그 다음 날 같은 시간에 ‘어제 인생에서 내가 가장 힘든 날을 보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힘들구나’ 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에 정말 중도포기를 해야 하는가를 매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종합수련병원의 전공의 수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도제식의 엄격한 교육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공부도 힘들지만 사실상 종합병원의 환자 진료의 큰 부분을 전공의가 담당하고 있고 대부분 응급실과 당직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그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의협에 따르면 현재 상당수 전공의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를 담당하고 있고 야간당직 근무 이후에 충분한 휴식시간이 없이 그 다음 날 바로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 전공의의 경우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 등 인권침해 수준의 열악한 근무여건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최근 많이 개선되었으나 현실이 이러다 보니 대학병원이나 수련병원의 응급실이나 입원을 경험한 환자라면 주치의 얼굴 한번 보기가 얼마나 어렵고 친절한 설명을 제대로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전공의 제도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정작 인권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체돼 있는 상태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시스템의 변화, 병원의 대형화가 이루고 있는 현대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는 아직도 100시간이 넘는 근로에 혹사당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당직비를 제공 받지 못하고, 휴가조차 제대로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수련병원의 몸집 불리기와 더불어 근로의 양적 증가만 더해졌을 뿐 수련의 질적 상승은 상대적으로 퇴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의료인 간, 환자와 보호자에게마저도 폭력에 노출돼 있으며, 이런 모든 상황들이 그대로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이런 열악한 전공의의 수련 환경은 미래 우리나라 의료를 책임질 의사들 자신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위생적으로 적용되어야 여러 의료서비스마저 왜곡시켜 의료사고를 통해 환자들도 그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협과 전국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수련을 위한 제반 규정을 법제화하기 위한 ‘환자 안전보장을 위한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현재 주당 최대 88시간으로 돼 있는 전공의 근무시간(이 규정은 병원협회의 자체 규정이나 법적 강제성이 없어 거의 지켜지고 있지 않다)을 주당 최대 64시간(당직 포함)으로 축소하는 것은 물론, ▲연속 수련시간 36시간 초과 금지(응급상황 시 40시간까지 가능) ▲응급실 수련 시 최대 12시간 근무 후 12시간 휴식(대한응급의학회가 인정하는 경우 24시간 근무 후 24시간 휴식 가능) ▲당직일수는 최대 주 3일 ▲당직수당은 당직일수 고려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여성 전공의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휴가 3개월을 의무화하고 수련기관이 전공의와 계약할 때 반드시 수련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처벌 조항이 들어간 점도 눈에 띈다. 일반 근로자 기준으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내용들이지만 이런 내용이 새로운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그동안 전공의의 근로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주먹구구식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전공의에게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병원협회는 공식적으로 법 제정을 반대하고 공청회 등 일체의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대표단이 국회를 방문하여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몇몇 국회의원에게 입법 저지를 요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상대적으로 고액의 연봉을 가진 전문의의 채용을 늘려야 하는 병협의 입장에서는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열악한 전공의 수련 및 근로 환경에 대해서는 병협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환자와 국민의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위해서 반드시 전공의 특별법은 필요한 만큼 정부, 병협, 전공의 등 당사자의 지혜를 모아 현명한 답안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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