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의원
아줌마 의원
  • 이경신
  • 승인 2015.03.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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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샘추위가 제법 시샘을 부리던 엊그제 지역 민원 문제로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뵙기 위해 경로당을 찾았다. 마침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신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일명 ‘양촌리표 커피’를 타드렸다.

 한참을 커피와 씨름하는데 갑자기 한 어르신이 “아줌마! 나도 커피 한잔 타줘...”하시길래 뒤돌아 보니 제법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손을 내미셨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얼른 커피를 타드렸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어르신이 “이 사람아, 아줌마가 뭐야, 전주시 시의원이야, 시의원!” 하며 아줌마라고 부른 어르신을 타박했다.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아이쿠, 어르신 괜찮아요. 저 아줌마 맞아요.” “어르신!, 아줌마표 커피 맛있으시죠. 한 잔 더 타드릴까요?”라고 말하자 좌중이 폭소를 터트렸다.

 웃어 넘기고 말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시의원인데...” 라는 자존감에 뭔가 어색하고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줌마’라는 호칭처럼 친근하고 정겨운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아줌마라는 호칭이 궁금해 국어사전을 찾자보니 아줌마 또는 아주머니는 여성을 일컫는 대표적인 칭호이며 ‘결혼한 여자’를 평범하게 부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점차 커지면서 ‘억척스럽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자화상이 주로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면서 누구나 아줌마라고 부르면 언잖아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또 우리 아줌마들의 억척스러움도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는데 한 몫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 빈 좌석이 생기면 어느 틈엔가 쏜살같이 달려가 자리를 차지하고 안면 몰수하는 사람들의 십중팔구가 아줌마라는 것이다. 정도를 넘는 치맛바람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물건 값을 깍고 또 깎고, 어떤 모임이나 행사장에서 갑자기 대식가들로 변모해 금새 음식을 동내는 것도, 바로 그 아줌마들의 위대(胃大)한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아줌마들의 열정과 억척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 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의원으로 일하면서 어느 땐 여성보다 아줌마가 더 편 할 때가 많다. 바쁜 일정속에 행사장과 민원현장을 찾다보면 거추장스런 하이힐보다는 운동화 같은 단화가 제격이고 처음 뵙는 어르신들이 이웃집 아줌마로 대해주는게 더없이 편안하다.

 최근에 전북대병원에서 잔반 없애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아줌마 의원이 꼭 해야할 일 같아 자주 찾아 벤치마킹하고 있다. 전북대병원은 매일 2천여명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달초 부터 잔반없애기 운동을 실천해 음식물쓰레기를 3분의1 이상 줄이는 등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전주시청 등 관공서와 시내 음식점에서도 잔반 없애기를 실천하면 재정적 측면이나 환경적 측면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을 듯 싶어 여성의원 아니, 아줌마 의원으로서 욕심내 관련 조례와 지원방안을 공부하고 있다.

 사실 시의원 하는 일에 남성, 여성의원이 따로 구분이 있겠느냐마는 아줌마 의원으로서 때론 어머니와 같은, 누이 같은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고 싶다.

 어째든 그날 경로당에서 나를 아줌마로 불러준 어르신이 참 고마우신 분이다. 시의원으로 어설픈 존재감보다는 오히려 당당한 아줌마 의원으로 깨달음과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의 계기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조만간 그 경로당을 다시 찾아 “아줌마 의원 이경신입니다. 아줌마표 커피 한잔 타드릴까요?”라고 커피장사를 야무지게 해야겠다.

 이경신<전주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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