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상서(上西)초 졸업횟수만 있고 졸업생은 없었지만 나는 1948년 상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동화실마을. 상서면과 하서면의 최 접근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상서초등학교. 학동 수가 원체 적어 곧 폐교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기에 나는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려고 작년 10월 말경 이 학교를 찾은 적이 있다.
나를 맞아주신 교장선생님은 뜻밖에도 여자분 ‘이영란’이라는 명함을 건네주셨다. 이 교장선생님이 제 33대 교장으로 부임한 것은 작년 9월 1일. 그 때 전교생은 단 3명이었다. 이 교장선생님은 부임하면서부터 어떻게든지 학교를 살려보려고 학동 불리기에 진력한 것으로 보였다. 그에 따른 성과로 내가 학교를 찾은 그 날까지 약 2개월 동안에 2명을 더 늘려 5명의 전교생을 보살피고 있었다. 그 뒤에도 점차로 증원, 지난 학년도 말(2014년)까지 모두 9명으로 늘렸고 올 신학년도에 1명의 신입생을 더 받아 지금은 전교생이 10명이다.
남자도 아닌 여자 교장선생님이 반 학년 동안에 학동수를 3배로 올린 성과에 대해 나는 진정으로 머리 숙인다. 이 교장선생님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6학년 학동이 없어 내년(2015년)에는 졸업생을 낼 수 없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2014년까지의 졸업 횟수가 90회인데 졸업생이 없는 2015년의 졸업 횟수를 90회 그대로 묶어둘 것인가 아니면 역사성을 고려, 한 회를 더 올린 91회로 할 것인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시간은 흘러 전국의 각급 학교가 졸업식으로 법석이던 지난 2월, 상서초등학교에서는 역사성을 중시한 교장선생님의 결단으로 졸업생이 없는 졸업횟수 올리기 조치만 이루어졌다.
생각해본다. 통시론적이 됐던 공시론적이 됐던 어떤 방식으로 살펴보아도 세계 어느 지역에서 또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몹시 우울해진다. 학교 연혁을 보니 상서초등학교는 1922년 부서공립보통학교로 설립되었고, 1941년 상서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부서(扶西)는 부안 서쪽을 말한다. 부안 서쪽인 부서는 상서면과 하서면을 말한다. 부서학교는 상서 사람과 하서 사람이 함께 공부하라고 설립한 학교다. 그래서 지금의 위치도 면 경계인 내변산으로 가는 국도 부근으로 잡은 것이다. 1941년 상서학교로 개명한 것은 그 무렵 하서면 청호리 닭실마을에 하서(下西)초등학교가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0회까지 졸업한 총 인원은 6천447명. 이 중 생존해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이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교장선생님도 부서에 대한 의문을 이제야 풀었다고 했다. 상서학교는 93년이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지리적으로도 중요성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 위치가 상서면과 하서면의 정중앙 지점이다. 상서면과 하서면은 한 블록으로 형제간과 같다. 그래서 우리 세대사람들은 서로 부서인(扶西人)이라고 했다. 이런 학교가 없어지면 되겠는가.
만에 하나 학교를 줄이고 더 줄여 권역별로 하나만 남겨둔다면 지금의 상서학교자리로 헤쳐모여 새로운 부서(扶西)시대를 열어야한다. 상서학교가 지금까지 존속하는 것은 폐교 조치를 잘 하지 않는 전북 교육 당국의 어르신 덕이라고 들었다.
진보의 진정한 가치는 약자·소수자와 같이 하는 “동행”이고 ‘미니학교 이끌어 줌’은 동행의 한 표본 사례일 것이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어르신을 직접 찾아뵌 적이 있다. 그때 근엄한 태도로 대해 주심에 다소 기가 죽기도 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 또다시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 “독두(禿頭)가 부끄러워 벙거지는 쓴 채로 머리를 숙입니다.”
<신정호 전 조선일보 전주 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