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물리치다 -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안 된다!
적을 물리치다 -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안 된다!
  • 이동희
  • 승인 2015.03.10 17:0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께서는 깜짝 놀라실 것이다. 전시도 아닌데 웬 적 타령이냐고? 실은 반드시 물리쳐야 할 원수[敵]가 아니라, 우리말의 어조사 적(的)에 대해서다.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부쩍 쓰인 이 꼬리말[접미사] 적(的) 때문에 우리말의 쓰임이 매우 볼썽사납게 꼬여 있기 때문이다.

 이 한자말 어조사는 제한된 쓰임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아무 말, 고유어-순수한 우리글이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조어]들에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다. 한심한 것은 이 어조사 적(的)을 꼬리말로 붙이면 지적이고 고급한 언어를 구사하는 인상을 주는지 좀 아는 체[현학적]하는 말에는 어김없이 적을 붙여서 함부로 쓴다.

 이를테면 ‘마음으로’해도 충분히 그 뜻을 담아낼 수 있음에도 ‘마음적(的)’으로라고 말한다. 굳이 마음에 적을 붙여 표현하고 싶다면 마음의 한자어인 ‘심정적(心情的)’으로 해야 올바른 언어구사가 된다. 나아가 ‘사랑으로’하면 될 것을 굳이 ‘사랑적’으로 표현하는 말의 실태를 지켜보노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우리말은 우리말답게 쓰고, 한자어는 한자어답게 쓰면 되는데, 유식한 듯 째를 부리려는 잘못된 말투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우리말을 낮추고 남의 나라-큰 나라에서 들어온 말을 숭상하는 잘못된 언어습관 때문이다.

 중국을 사대로 섬기던 때는 한자가 주류어가 되어 백성들의 언어습득을 제한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지배층이 되어 우리말-한글 말살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은 어떤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오나가나 영어타령이다. 대통령부터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영·유아까지 영어를 해야만 일등국민이 되는 형국이 되었다.

 이때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현 정부가 과거 민주정부의 정책을 정반대로 꾸려가는 ‘역주행 정부’라 하지만, 교육마저-그것도 초등학교 교육에까지 이렇게 반지성과 비효율 정책을 내놓다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언어는 인문학의 핵심이다. 말은 단순히 학문의 도구뿐만 아니라, 언어[말] 자체가 곧 인간의 삶이 되는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의 주택 속에 인간은 산다.”(하이데거)는 말을 빌리는 것도 구차하지만, 진리다. 한자의 집에 사는 사람은 ‘한문형’ 인간이 되고, 일어의 집에 사는 사람은 ‘일어형’ 인간이 되며, 영어의 집에 사는 사람은 ‘영어형’ 인간이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반대하는 것이 이런 이유만이 아니다. 삶을 창조하는 원동력인 언어[문자]를 활용한 창조성 계발에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한자말-한문자 풀이에 빼앗길 아이들의 시간낭비를 생각하면 통탄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날로달로 발달하고 변모하는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려면 기존의 지식을 뛰어넘을 창의성 계발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판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여 얻으려는 이득이 무엇인가?

 문자 표기와 그 응용상의 원리에서 보는 한자병기의 부당함은 따로 말하겠지만, 적은 밖에만 있지 않다. 우리 마음과 의식 안에 도사리고 있다. 한자병기라는 역주행 정책입안자들의 내면에 도사리는 반지성의 적부터 물리쳐야 한다. 필자의 졸작 <적을 물리치다>를 일부 소개하며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의 부당함을 재삼 강조한다.

  <어느 날,/ 창밖에 눈보라가 서성거려 내가 탄 말이 달리지 못하는 날/ 펜을 창처럼 꼬나 쥐고 나는 결심했다/ 적들을 물리치리라, 그 꼬리를 자르고야 말리라// 그런 날 이후/ 나는 아주 쉽게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심정的으로 연애감정이 일어나지 않자/ 마음으로 열고 보니/ 저 파란 창공이 사랑새를 날려 보내곤 했다/ 내的으로 파랑이 일어 미운 파도가 사람을 덮치자/ 안으로 돌아보니/ 바다는 정작 고요한데 얽히고설킨 칡넝쿨이 나를 옭죄고 있었다/ (중략) 그런 날 이후에도/ 쉽게 물리칠 수 없는 적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법치주의가 한 통속이 되자/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람이 주인 되는 그물망이/ 너무 성글어/ 적들이 매우 쉽게 빠져나간다는 것을(하략)>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한강 2015-04-08 16:01:21
한자문화권? 언제까지 그런 꿈같은 소리를 할 건가요? 이제 한글문화권을 만들 때입니다. 우리는 반세기만에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서 국민 수준이 빨리 높아졌으며 그 바탕에서 경제와 민주주의도 빨리 발전하고 한글문화가 꽃펴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본류, 중국류]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정신 차립시다. 한글은 우리 자존심이고 자긍심입니다. 한글이 빛나면 우리 겨레도 빛납니다.
섬진강 2015-03-16 07:47:21
적어도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며 문학평론가라는 분의 생각이 이 정도임에 놀랍니다.
우리 국어를 더 잘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서도,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한자문화권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도 한자 교육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