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는데…
봄은 오는데…
  • 황의영
  • 승인 2015.03.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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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칩(驚蟄)이 지났다. 경칩은 봄의 전령(傳令)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밖으로 튀어나온다는 날이다. 눈 녹은 시린 물은 졸졸졸 산골짜기 도랑을 흘러내리며 봄의 교향악(交響樂)을 연주한다. 시냇가 버들강아지 눈뜨고 돌미나리 푸른빛을 더한다. 양지바른 들녘엔 쑥이 기지개를 켜며 새싹을 키운다. 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알린다. 머지않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개나리가 병아리 같은 노란색 꽃을 피워낼 것이다. 울긋불긋 진달래도 온 산을 물들일 것이다.

 봄이 오면 농사꾼은 마음이 설렌다. 올해는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농사가 잘되어 혼기(婚期) 지난 아들 녀석 짝은 지워 줄 수 있을까? 다 빠진 치아를 틀이라도 해 널 수 있을까? 큰아들 전세금이라도 올려줄 수 있을까? 막내 대학 학자금은 농협에서 빚을 내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등등 농사를 잘 지어서 효과적으로 돈을 쓸 수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기에 바쁘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삶이 팍팍하고 의욕이 없다. 농업인은 요만 때가 되면 볍씨 담글 채비를 하고 못자리할 준비를 한다. 지난해 쓰다가 넣어 두었던 농기계를 닦고 손질한다. 요즘이 풍년농사를 이뤄내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정문을 각각 자기나라 언어로 번역 중이다고 한다. 번역되어 국회의 비준을 얻게 되면 발효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중국의 값싼 농산물이 봇물 터진 듯 밀려들 것이다. 농산물은 물론이고 김치·다대기·절임류 등 가공식품도 밀려올 것이다. 근본적으로 중국의 농산물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수입돼 팔리게 될 것이다. 시장에서 가격이 싼 물건이 잘 팔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프랑스·칠레 등 농업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우리 농업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는데 근접국(近接國)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마저 발효되면 농업분야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는 일제시대 빼앗긴 조국의 비통함을 노래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詩) 서문(序文)이다. 외세의 침략으로 조국의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 국민으로서 울부짖음을 노래한 시다.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경제적으로 농업강국에 예속(隸屬)돼 우리 농업이 궤멸(潰滅)한다면 이상화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외국의 농민에게 우리 들녘을 빼앗기고 우리의 농토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외국농업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농업인들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벼농사를 짓고 난 논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데워 참외·딸기·수박·시금치·무·배추·미나리·쑥갓·아욱·냉이·쑥 등 열매채소·잎채소·산나물·들에 나는 나물까지도 생산해내고 있다. 근래엔 제철 과일이나 제철 채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됐다. 연중 언제라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잼(jam)은 고전(古典)이고 사과로 조청을 만들고 잘게 썰어 건조시켜 과자처럼 먹게 한다. 사과로 와인을 만들고 한과를 만든다. 블루베리를 심고 수확해 젤리(jerry)를 만들고 잼을 만들어 판다. 호박으로 즙을 짜고 죽을 만들어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다. 이제 농업과 공업이 접목되어 농공업이 성황을 이룬다. 체험농장 등 도시민을 농촌으로 끌어들여 조상대대로 전해져온 여러 가지 전통적인 행사와 식품제조법을 배우고 익히게 한다. 농장에 들어가 농작업을 하게 하고 자기가 생산한 농작물을 스스로 수확케 하는 주말농장, 과수분양 등 다양한 형태의 농촌 관광을 실시하여 도시민을 농촌으로 끌어들여 소득을 올린다. 그래서 농업은 6차 산업이라고 하지 않는가? 농업 1차 산업, 농가공업 2차 산업, 농촌관광 3차 산업, 이들을 곱하면 6차 산업이 된다. 지금 글로벌기업들이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 농업이라 하며 농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분명, 농업은 미래산업이고 생명산업이다. 전망이 밝다. 우리 농업인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영농활동은 중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 농산물과도 싸워도 이길 수 있고, 우리의 농토가 이상화의 시에서처럼 “빼앗긴 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우리 농업인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말자. 그래야, 우리의 들녘을 빼앗기지 않을 것 아닌가?

 황의영<전북대 무역학과 강의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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