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전쟁영웅] 한정일(1915~1987)
[이달의 전쟁영웅] 한정일(1915~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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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0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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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한정일 경감을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시작된 후 한 달도 안 되어 남한의 대부분이 북한군에 넘어가고 광주, 순천, 광양까지 함락되던 무렵, 전남 곡성경찰서에도 ‘모두 퇴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곡성경찰서장이던 한정일 경감은 ‘주민을 버리고 철수할 수는 없다.’면서 자발적으로 ‘곡성전투경찰대’를 조직하였다.

7월 24일 경찰과 의용대원 중 자원자를 중심으로 전투가 가능한 520명을 인솔하여 곡성군 태안사에 입산한 한정일 서장은 전투중대 4개 중대, 유격대 1개 중대, 정찰대 1개 소대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고 인근 산악지대에 배치하여 즉각적인 출동이 가능하도록 조치하였다.

7월 28일 오후 생포한 북한군으로부터 순천에 진입한 북한군 제6사단 중 일부(603기갑연대)가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29일 정오경 압록교(섬진강 상류)를 통과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한정일 서장은 매복 작전을 펼쳐 북한군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북한군 3개 중대를 상대로 벌인 치열한 전투 끝에 적군 52명을 사살하고 아군은 1명만 사망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타격을 입은 적군이 다시 압록교를 넘기까지는 일주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전투경찰대의 피해도 컸다. 8월 6일 새벽 북한군 1개 연대의 기습 반격으로 인해 태안사에서 48명의 경찰관이 전사하고 200여 명이 다치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에 전남 광양 백운산으로 철수한 한정일 서장은 다시 잔여 대원들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북한군의 보급로를 기습하는 등 유격전을 지속하여 끊임없이 북한군에게 타격을 가하였다.

  한정일 서장이 이끈 곡성전투경찰대는 전쟁 초기 유격전이 국군 낙오병과 일반인에 의해 수행되었던 것과 달리 조직력을 갖추고 자발적으로 적진에 남아 유격전을 전개했다는 점과 압록교 전투를 대표적인 경찰 승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의의를 평가받고 있다.

  <전주보훈지청 보훈과·☎239-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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