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시민적 애국주의
태극기와 시민적 애국주의
  • 권영후
  • 승인 2015.03.03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을 시샘하는 쌀쌀한 날씨와 황사바람이 부는 3월1일 오전에 삼일절 기념식을 다녀왔다. 예년과 다름없이 태극기에 대한 경례부터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독립선언문 낭독, 주요인사의 기념사,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매년 삼일절이면 대통령의 대북한 대일본 메시지가 등장하고, 지역마다 해당 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한 역할과 기여도를 강조하는 일이 반복된다.

 국경일마다 정부는 태극기를 달자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집에 태극기를 달지 않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언론의 보도 때문에 망신을 당하곤 했다. 또한,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아파트의 사진이나 영상은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국경일은 모든 국민이 태극기를 다는 애국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날로 자리잡게 되었다.

 태극기는 국가 공동체의 상징이다. 국기배례는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습관으로 간주한다. 태극기는 존중의 대상이고 비국민을 배제하는 두려움의 원천이다. 따라서 태극기는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호명된다.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국기배례를 애국에 대한 최소한의 행동으로 내재화하는 교육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자라나는 젊은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태극기를 변주하고 받아들인다. 평소에는 무관심의 영역에 있지만,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 같은 놀이문화에서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1990년대에 태동한 신세대 주도의 대중문화 흐름과 민족에서 시민으로 의식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태극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은 태극기에 대한 국가주의라는 관념을 벗어던지는 변곡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태극기는 패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국민들과 한층 가까워졌다. 태극기는 국기 게양대라는 공중으로부터 땅으로 내려온 셈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거론하며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고, 그렇게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강조하면서 애국주의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맞춰 정부는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1989년에 없어진 국기하강식을 부활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보수와 진보 모두 애국주의는 전쟁 등 국가위기 시 국난극복에 기여하고, 국가발전에 필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애국주의는 정치공학 수단으로 악용되어 정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종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자기편에 유리한 기준으로 편가르기 하고, 상대를 악마로 낙인찍기도 한다. 이는 ‘애국 갑질’, ‘애국독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애국주의는 세대 간의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기성세대는 피땀 흘려 이룩한 선대들의 국가발전에 대한 노고와 애국정신을 존경하는 마음이 젊은이들에게 부족하다고 한탄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 것만 챙기고 국가 공동체는 관심 밖이라며 애국의 길을 가라고 다그친다. 반면,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애국주의는 권위적이고 강제성이 강하다면서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복고주의로 여긴다. 차별과 억압이 없는 국가 공동체를 지향하는 시민적 가치에 맞는 애국주의를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젊은이 중에는 소수의 일베같은 뒤틀린 애국주의가 있기는 하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고 나라를 사랑하자고 외치는 애국주의는 자칫하면 선정적 애국 상업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시민의식이 결여된 맹목적이며 감정적 애국주의는 나치 독일처럼 위험하고 잔인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권위주의 시대를 계승한 일방적 애국주의는 사회적 갈등과 쟁점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참사에서 목격한 바와 같이 시민의식이 결여된 관념적 애국주의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공동체 발전을 위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깨비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족, 국민, 시민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나라다. 편협한 민족국가가 아니라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시민국가다. 생활정치 중심의 시민적 애국주의가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워 약자를 차별하는 쇼비니즘은 배격해야 한다. 엄격한 법치보다는 자치, 협치, 참여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바탕으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발전을 도모하는 ‘소통하는 애국주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권영후<소통기획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