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참지 못하는 사회, 분노조절장애
화를 참지 못하는 사회, 분노조절장애
  • 김형준
  • 승인 2015.02.26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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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사망한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있을 때 애플 직원들 사이에서 하나의 금기 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잡스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라’였다. 잡스가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을 만나면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안 나오면 불처럼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해고하는 일이 반복되자 이런 금기사항이 공공연히 직원들 사이에서 퍼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혹시 잡스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것을 두려워해서 계단을 통해 이동하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스티브 잡스는 분노조절장애라는 일종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한 적도 있다고 하니 그 정도가 상당히 심했던 것 같다.

  분노는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가슴 속에 화가 과도하게 쌓여 있으면 이것이 잠재되어 있다가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 생기면 화가 폭발하게 된다. 분노는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드러내거나, 품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병적으로 분노가 표출될 때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울)화병은 화를 참고 과도하게 억압하면서 생기는 증상을 말하는데 과거에는 우리나라에는 지나친 분노 억압으로 인한 화병이 많았지만, 지금은 지나친 분노 폭발로 인해 분노 조절 장애가 더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헤어진 동거녀에게 앙심을 품고 총기 살인을 저지르거나 자신의 차를 가로지른 것에 화를 못 참고 삼단봉을 휘두른 고급승용차 주인 등 이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어지는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재벌 상속녀의 분노로부터 시작된 땅콩회항 사건, 화를 참지 못하고 인격적인 모욕을 주며 점원을 무릎을 굽게 한 백화점 모녀사건 등 일일이 언급하기에도 많은 이런 사건들을 볼 때 온 사회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그대로 남에게 쏟아 놓은 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과거 우리나라는 세계정신의학계에서 ‘화병’이라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정신질환이 한국에는 있고 이것은 분노와 같은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여 오히려 모호한 신체적인 증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될 정도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IMF와 세계경제위기 이후 장기간의 경제적 불황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실업, 실직, 사회 안정망의 부재 등 뉴스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런 단어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듯하다. 결국, 탈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의 사회적 욕구들이 점점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빼앗아가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좌절된 욕구는 분노를 만들게 되고 이것이 공격성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공격성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 폭력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공격성이 자신을 향하게 되면 바로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세계 1위의 자살률을 보이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분노조절장애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사실 하나의 원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핵가족과 일인 가구의 증가처럼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해체되는 점도 이런 문제의 또 다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가족은 성숙한 대인관계를 배우는 학교이자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훈련장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바쁜 부모와 학업으로 더 바쁜 자녀들, 낮은 출산율이 보여주듯 함께 어울리고 감정을 나눌 형제의 부재 등 점점 우리의 가족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인격의 성숙을 배우지 못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인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로 나오고 있고 크고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고 분노감에 휩싸여 결국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지는 것 같다.

 요즘 2, 30대 젊은이들을 ‘삼포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취업,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하는 뜻인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눌려야 할 이 기본적인 욕구마저 포기 당하는 세대를 일컫는 씁쓸한 의미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사회적인 욕구가 좌절되고 이것이 모멸감과 열등감을 일으켜 공격성이 분노로 나타나는 것이 최근 분노조절장애가 늘어나는 원인이다. 결국이 이것이 해결되려면 사회적 욕구가 실현될 수 있는 많은 일자리와 튼튼한 사회안전망도 중요한 일이며, 가족의 복원이라는 정신적 가치의 회복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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