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비정상화, 수도권 규제완화 안 될 말
정상의 비정상화, 수도권 규제완화 안 될 말
  • 전정희
  • 승인 2015.02.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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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에 의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균형발전’은 사치라는 위헌적 국정철학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정부 초기에 ‘나는 균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리고 MB정부 5년간 균형의 가치는 철저히 금기시됐다. 이 전 대통령은 수도권 규제완화와 행정중심 복합도시 무력화 시도 등을 통해 지방을 피폐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지역발전위원회로 바꿔 단순 자문기구로 전락시키고, 참여정부가 놓은 균형발전의 디딤돌마저 치워버렸다. ‘선 지방 육성 후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말 ‘규제기요틴’(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은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하는 방식)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수도권 U턴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허용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 입지규제 완화 △항만 및 공항 배후지 개발 제한 완화 등이 제기되자, 이를 ‘덩어리 규제’로 간주하고 ‘규제의 단두대’에 올리겠다고 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수도권 규제마저 철폐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까? 수도권기업의 생산 활동이 비수도권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비수도권 기업의 생산 활동이 수도권에 미치는 파급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수도권에 경제·산업·문화·교육·인구 등 모든 면이 집중되고 과밀화된 현 상황에서 규제를 풀면, 그나마 지역에 내려왔던 인력과 자본마저도 수도권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지역 간 격차가 더욱 벌어져 사회 갈등이 심화되면, 국가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불 보듯 뻔하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작성하는 지역산업연관표를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수도권기업의 생산 활동이 비수도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훨씬 적음을 알 수 있다. 수도권에 투자하는 것보다 비수도권에 투자하는 것이 국민경제 활성화와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발주한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 대응 및 지역균형발전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도 개발 이익이 수도권에 집중돼 비수도권의 개발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석결과로 미뤄 볼 때, 수도권 규제를 풀어서 투자를 활성화시키면 수도권에서 일정한 추가적 성장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비수도권의 경우 지역의 장래에 대한 비관주의가 확산해 혁신·기업도시를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성장 기반마저 와해시킬 것이다. 따라서 비수도권의 성장잠재력이 상당 정도 형성될 때까지 수도권 규제는 유지돼야 한다.

 지금 산업통상자원부는 과거 해외에 진출했다가 국내 복귀를 원하는 U턴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할 경우에도 조세 감면과 보조금 지원 등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필자가 만든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지방에 대한 정부의 선전포고로 볼 수밖에 없다. 2012년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개발이익을 비수도권에 돌려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지역상생발전기금’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합의도 지키지 않으면서, 무슨 의도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도권 집중 해소책과 획기적인 지방발전 대책부터 마련해야 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 아닌가. 수도권만을 위한 외눈박이 대책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지역 격차에 따른 사회 갈등이 커지면, 국가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현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전정희<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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