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문맹의 시대
의사문맹의 시대
  • 이동희
  • 승인 2015.02.0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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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M.바우어라인 <가장 멍청한 세대>에서) (질문)교황은 어디에 사나요? (20대 미국 젊은이)영국요. (시치미를 떼고 되묻는다.)영국 어디요? (젊은이)음……., 파리요.

 <장면-2> (<인물과 사상>통권 제202호에서) (질문)고려를 건국한 사람은? (고교생)궁예요! (질문)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은? (고교생)이수만요. (질문)10.26사태는 언제 일어났는가? (고교생)12월6일요.

 <장면-3> (공직 은퇴자들의 모임에서) (질문)요즘 무슨 신문 보세요? (60대를 넘긴 응답자)눈이 어두워 신문은 무슨, 종편이 재밌더만! (질문)무슨 내용인데요? (60대)정치평론가들 입담이 들을만해요. 정치하는 놈들,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진개진이라고, 싸잡아 욕해대는 것을 듣노라면 속이 다 후련해요!

 <장면-4>(대학 입학사정관으로 참여한 어느 교수의 소감에서) (교수)존경하는 인물은? (입시생)우리 아버지요. (교수)아니, 부모님 말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해 봐요. (입시생)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쭈물…(대답을 못한다)

 <장면-5>(<인물과사상> 통권 제202호에서) 파업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지만, 2003년 말의 철도 파업 주동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법은 죽었구나. 이 인간들 때문에 국민이 얼마나 피해를 봤는데. 이 판결은 후세에 반드시 국치로 알려지고 기억될 것이다.”

 <장면-6>(김종철 <녹색평론>발행인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우루과이의 절대 빈곤선 이하가 40%였는데 호세 무히카가 대통령이 되고서 10% 이하로 줄었다. 나라의 한정된 돈으로 어디에 우선권을 주느냐가 정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마음이 좋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 노인연금을 하겠다고 해서 많이 찍었다. 그런데 정부가 뒤집었고, 까다롭게 조건을 제시하면서 공약을 무효화했다. 요즘 서울 노인들한테 물어보면, “나라에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겠느냐?”고 한다. 나라에 돈이 있고 없고를 그 노인들이 어찌 아느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군사무기는 사면서 말이다.

 문맹(文盲)은 문자를 해득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0%에 가까워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아직도 1.7%가 (통계청. 2008) 문맹이라고 한다. 문자 해독을 못 하는 분들을 위해 성인학교-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만학을 이룬 인간승리의 미담가화가 뉴스로 뜨는 것을 보면 문맹퇴치는 여전히 필요한 덕목이다.

 문맹의 ‘맹(盲)’이 인격비하의 뜻이 있어서 요즘에는 문맹률(文盲率) 대신 문해률(文解率)이라고 쓴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자를 해독하지 못해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보다는 글을 읽을 줄 알면서도 책을 읽지 않는 현상이 더 큰 문제다. 글을 읽을 줄 알지만 독서하지 않는 사람을 의사문맹(擬似文盲)이라고 하는데, 근래 의사문맹은 그 도를 넘어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장면들이 의사문맹 시대의 위험을 웅변한다.

 요즈음을 일컬어 디지털 세대라고 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전자 매체는 가히 쓰나미 현상을 방불케 한다. 틈만 나면(이때의 틈은 시?공을 불문한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에 몰입하느라 무아(無我)-무인지경(無人之境)에 빠져든 모습뿐이다. 시내버스건 지하철이건, 심지어 길을 걸어가면서도 다들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 삼매경에 빠졌거나 대화창을 띄워놓고 통신하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이런 디지털-영상세대가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데 있다. 책을 멀리하고 인쇄매체와 담을 쌓음으로써 역사적 진실과 현실의 문제에 눈을 감는 현상은 전 세대적이다. 그런 결과 역사의 진실과 공동체의 가치에 눈을 감는 인문학적 맹아(盲兒)가 양산되고 있다. 사회의 약자와 차별받는 지역을 헐뜯는 ‘일베충’의 만행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인용한 책 <가장 멍청한 세대>에서 흑인 노예에게 글 읽기를 가르치는 안주인에게 남편이 말한다. “배움[책읽기]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흑인 노예도 망쳐놓을 거야. 당신이 저 흑인 노예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친다면 더 이상 놈을 잡아둘 수 없어. 영원히 노예로서는 불합격이라고!” 이 말이 그저 디지털과 종편에 넋을 빼앗긴 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그저 1번만 찍어주는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고하는 정치 선전꾼들의 질책으로 들린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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