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을 두 번 죽이는 길
전북을 두 번 죽이는 길
  • 이춘석
  • 승인 2015.02.0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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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고속철이 개통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서대전을 경유하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당초 3월로 예정됐던 개통 시기도 한 달이 연기됐다. 이미 KTX가 지나가는 길목의 지역들은 대전권과 그 외 지역으로 홍해가 갈라지듯 여론이 양분돼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손을 놓고 있다. 시원하게 달려야 할 호남의 철도 앞에 또다시 지역차별의 멍에가 가로놓여 있다.

고속철은 본래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리도록 설계돼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의 고속철은 실제 300km에서 350km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그러나 호남 고속철의 속도는 이의 절반 남짓을 넘나드는 수준이다. 그나마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평균 시속 240여 킬로미터를 유지하지만, 광주에서 목포 구간은 시속 200km에도 못 미친다. 호남의 KTX가 ‘고속철’이 아니라 ‘저속철’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이에 호남 고속철 사업은 충북 오송에서 광주 송정 간에 182.3km의 고속 철로를 건설해 서울과 충청, 호남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고 서해안시대에 걸맞게 호남지역의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송에서 남공주를 지나 익산으로 연결하겠다던 당초 노선 중 일부가 서대전을 경유하는 것으로 돌연 변경된 것이다.

호남선 철도는 복선화사업에만 36년이 소요됐다. KTX가 개통된 이후에도 경부선보다 비싼 요금체계라든지 일반선로를 이용하는 데서 오는 저속의 문제, 커브길 등 곡선 선로구간이 많아서 생기는 사고 위험의 문제 등등이 수없이 지적됐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고속선을 놓는 과정에서도 국토부가 예산절감을 이유로 광주~목포간 직선 선로를 포기하고 기존 선로를 활용하기로 하면서 이미 지역차별 논란을 한 차례 야기한 바 있었다. 그런데 개통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 또 다시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지도록 한다는 것은 과연 호남지역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정말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전북 도민들의 가슴 속에는 아직도 LH공사를 빼앗긴 상처와 상실감이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상황이다. 도민들 앞에서 그렇게 호언장담을 해 놓고 LH공사를 통째로 빼돌린 어처구니없는 전사를 또다시 반복하겠다는 것인가. 호남을 영남 간의 지역차별에서 낙오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의도적 충청 간 지역갈등을 만들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특히 이 논란이 촉발된 배경에 지난 총선에서 대전 지역으로 출마한 바 있던 현 코레일 사장의 정치적 의도가 농후하다면, 이는 대전이 아닌 다른 충청 도민들의 요구와도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국토부는 코레일이 제출한 운행계획을 일단 반려했다. 그러나 코레일은 노선 결정권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국토부 측 역시 결국 직접 운행을 담당하는 곳에서 방안을 만들어 와야 한다며 공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기가 차다. 전북도민에게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운행계획을 바꾸더니 이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한다. 전북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고속철을 저속철로 만들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할 기회를 빼앗고, 가장 저열한 방식의 지역감정 조장으로 전북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려 하고 있다.

힘겹게 밥 짓고 반찬 만들어 밥상 차려놨더니 뒤늦게 숟가락 올리는 행위도 문제지만, 이 논란 뒤에 숨어 부추기는 정부가 더 큰 문제다. 호남민의 핏줄이 되어 줄 고속철을 더는 지역차별의 상징으로 만들지 마라.

정부는 지금 당장 나서서 이 모든 논란의 고리를 끊고 호남 고속철 사업을 본래 취지대로 밀고 나갈 일이다. 호남 저속철 논란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빼앗기는 전북 역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

이춘석<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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