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불관용
관용과 불관용
  • 황선철
  • 승인 2015.01.28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5년 1월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들이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기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총격으로 이 잡지의 전 편집장과 만평가·기자·경찰 등 12명이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1월 9일 프랑스 시민들과 각국 정치가들은 “나는 샤를리다”라고 공감과 지지를 표시하면서 대규모 반테러 시위에 동참하였고,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이후 프랑스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다시 선포되었다.

 최근 유럽에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으며 이민자 중 아랍과 아프리카계 무슬림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슬람포비아(이슬람공포증)’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지게 되어 ‘문명의 충돌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500만 무슬림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 이들 무슬림이 프랑스 사회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소수자로서 차별과 편견을 받고 살아가는 현실을 그냥 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종교적 극단주의와 극우주의를 배격하고 주로 풍자 만평을 통해 정치·사회·종교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하는 주간지로서 풍자의 대상에 성역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수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자신이 신봉하는 무함마드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언론사에 테러를 가한 것은 반이성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임이 틀림없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폭력의 악순환은 처절한 피해만 가져온다. 모든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 일뿐이다.

 다문화국가인 프랑스는 관용의 나라이다. 관용(寬容) 또는 톨레랑스는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즉,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용은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폭력으로 제거하려는 행동은 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풍자 만평이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서 적절했느냐’라는 문제는 제기된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무슬림의 종교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에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어쨌든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제한을 받아야 할 것이다.

 고명섭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은 “스피노자가 말한 표현의 자유는 지배적 가치에 맞서 다른 견해를 표현할 자유였지, 강자의 자리에서 약자를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릴 자유가 아니었다. 무함마드 모독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자유는 ‘표현의 자유’ 원칙이 태어난 이유를 헤아리지 못하는 오만한 자유이며 자유의 남용이다”라고 지적한 것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관용과 불관용은 동전의 양면이다. 당대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주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비주류 또는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고 멸시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관용은 연혁적으로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베풀었을 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베푸는 것은 양보와 타협이다.

 다문화 국가인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번 테러사건을 남의 나라일로 ‘강 건너 불 보듯’ 무시할 일은 아니다. 이민자들이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거나 통합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멸시와 차별이 <샤를리 에브도>만평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하였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우리나라에도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 탈북자 등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황선철<전북변호사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