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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는 영혼이 깃들다
이용숙 시인·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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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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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맨 처음 입을 열어 발음하는 음절이 무엇일까? 언어학 연구자들은 조음기관의 구조를 통하여 전인류의 최초의 음절을 ‘아래ㅏ(?)’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는 소멸된 모음으로 그 소리값은 ‘아’와 ‘오’의 중간음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이 ?에 연결되는 최초의 자음은 유음 ‘리을(ㄹ)’로 ?이라 한다. ?은 현대어 알(卵)이며,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알인 점에서 철학적 의미와도 상통한다. 우리 말의 의미 확장 가운데 ‘모음교체’가 있는데, 예를 들면 남다―넘다, 살(나이)―설, 낡다―늙다 등이다. 이 알도 모음교체에서 ‘얼(魂)’과 상통하는 것으로, 사람의 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가분의 것이다.

이 알은 깨어나 ?(肉身)을 갖추어 성체가 되며, 알과 살을 통괄하는 자리에 ?(言語)이 있다. 다시 말해서 말에는 얼(혼령)이 깃들며 이것을 언령이라고 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다”는 구절도 이와 별개의 것은 아니리라. 바르고 고은 말을 사용하면 그 영혼이 밝고 아름다우며, 또한 영혼이 맑은 사람의 언어는 순수하고 부드러운 법이다.
 

○ 순수 고유어의 수난

한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 척도는 여러 갈래의 기준이 있으나, 그 중 어휘의 수도 또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순수했던 우리 말이 한자에 침식당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어, 그리고 서구어에 유린당하고 있다. 언어는 생명체로서 사용하지 않으면 죽은말(死語)이 된다.

가령 가장 기초적인 강과 산마저도 한자말이다. 문제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가람?뫼’가 고유어인데 한자어를 숭상하고 쓰지 않으니 사어가 된 것이다. 방향을 지칭하는 동?서?남?북조차도 고어에서 ‘새?하늬?마?노’였는데, 지금은 어부들의 바람명칭에만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숫자도 일이삼사는 한자어이다. 우리말은 하나?둘?셋?넷인데 현재 활용하고 있는 순수 고유어의 숫자는 아흔아홉에서 끝나고 백부터는 한자다. 온(百)?즈믄(千) 같은 숫자는 죽은말이다.

엊그제 어느 단체의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전주의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도시 조사?기록화 작업’ 발표회와 토론의 장이었다. 참 흔히 듣는 사례로 행사가 시작될 때 사회자의 안내 ~지금부터 발표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여기다. 우리 말 어미에서 ‘~도록’은 어떠한 동작의 어디에 이르기까지의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면 ‘밥을 먹도록 해 주시오’와 같이 쓰일 수 있다. 또 기록화 작업에서 ‘~화’는 꼭 필요한 접사인가.

이 경우는 당연히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또 조사화 작업이 아니라면 기록화도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처럼 잘못 쓰이는 예가 한둘이 아니다. 불확실한 변명으로 쓴 ‘~같아요’가 그런 예다. 사물이나 현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노상 ‘부분’이나 ‘측면’만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가는 부분이나 측면도 보아야겠지만, 전체나 정면을 보는 태도가 대개는 떳떳하겠다.
 

○ 사물 존대의 언어 예절

국방의무로 사병 생활할 때였다. 운이 좋게도 후방 예비사단에서 사단장실 행정서기병으로 근무한 바 있다. 부대 내외의 갖가지 전화를 받을 때 ; “예 사단장실 서기병입니다.”하고 받다가 엄청 혼이 난 적이 있다. 사단장실이라니, 건방지게! 사단장님실이라고 ‘님’을 붙여야 한단다.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국어 교사를 재직했던 내가 열심히 설명하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판정패. 그냥 따르란다.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씁쓸하다. 웬만하면 사단장님실님이라 할 것을.

요즘 우리 주변에 사물 존대와 같은 괴상한 높임말이 넘쳐나고 있다. 예전에 ‘아버님 대갈님’ 같은 고약한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무작정 경어를 써야만 바른 표현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특히 ‘~시~’로 요약되는 존경 선어말어미가 무분별하게 넘쳐 괴상한 꼴이 되고 말았다.

찻집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더니, “에스프레소 여기 나오셨습니다.”한다. 찻값이 2,500원이라서 3천원을 건넸더니, 돈을 돌려주며 “거스름돈이 오백원 되시겠습니다.” 한번은 아울렛 매장에서 T셔츠의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하고 내 체격에 맞는 규격을 주문했더니,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그런다.

이런 괴상한 높임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비문이다. 그러나 비문이기 이전에 비굴함이 묻어 있다. 교묘히 숨어 있는 비굴함의 강제가 실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소비자 주권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표준 언어 예절을 보급하기라도 해야 하리라.

고운 말 바른 말, 맑고 훈훈한 말, 순수하고 진실한 언어생활로 삶의 바른 태도를 가꾸어야 한다. 언어에는 영혼이 있다. 맑은 언어가 영혼을 맑히고, 밝은 영혼이 그 사람의 언어생활을 밝힌다.

 이용숙<시인·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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