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호 수몰민의 ‘한(恨)’ [2]
옥정호 수몰민의 ‘한(恨)’ [2]
  • 박영기 기자
  • 승인 2015.01.26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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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몰민 산증인 최종춘씨의 애환

“섬진강댐 정상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정말 남은 여생 잘 살고 재미있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최소 2천만원에서 6천여 만원까지 이주보상비를 받았지만, 새집을 지으려면 1억5천만원이나 소요돼 이주하면서 빚쟁이로 몰릴판여!”

임실군 운암면 임운로에 거주하는 최종춘씨(78)의 푸념이다.

최씨는 옥정호댐이 건설되기 전 면소재지인 당시 운암면 입석리에서 태어나 전 면소재지인 쌍암리에서 지난해까지 거주하다 이번 운암소재지 이주단지로 이사한 운암면 옥정호 수몰민들의 산 증인이다.

최씨에 따르면 지난 1925년 일제강점기하에서 진행되었던 수몰민들의 애환은 구댐으로부터 시작돼 1965년 신댐이 축조 되기까지 또 그 이후 섬진댐으로 인한 운암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세월의 연속이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아무런 대책 없이 우선 막고 보자는 식으로 호수 주변에는 주민들의 편익증진은 고사하고 이설도로나 순환도로 등을 전혀 설계하지 않은 채 섬진댐이 축조 됨으로써 옥정호 인근 18개 마을 주민들의 이동은 고통 자체였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운암면 선거리 주민들은 청웅, 임실, 관촌, 신평, 신덕 등 5개 읍·면을 거쳐야만 면사무소에 도착할 수 있다. 서류 한 장 필요하면 하루를 품 팔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은 지 오래되지 않는다.

특히 용담댐의 경우는 보상을 두차례에 걸쳐 해 주면서까지 댐을 건설했지만 섬진댐은 일제강점기에 거의 강제로 미미한 보상만 하고 주민들은 산으로 들로 내몰았다.

또한 정부의 이주대책은 아주 부실했다. 계화도 간척지는 10년이나 늦게 완공됨으로써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수몰민들은 헐값에 농지 분배권을 전매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동진 폐유지는 원래 수몰민 287세대를 이주키로 계획했으나 폐유지 개답 및 농지분배 업무는 1964년부터 1981년까지 계속돼 최종적으로 4개군 40개 폐유지 256㏊를 265세대에 분배하고 잔여 수몰민은 계화도 간척지로 이주지를 변경했다.

반월 폐염전 이주도 수몰민 120세대를 정착시키기 위해 예정지 지정서를 발급하고 이주시켰으나 경기도에서 이주한 경기난민이 이미 점유한 토지 등으로 분쟁과 폭동이 발생하고 6차례에 걸쳐 시공사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공사기간도 4년이 소요돼 수몰민 대부분이 정착하지 못하고 귀향했다.

이처럼 정부의 이주정책이 실패하면서 이주민들은 전 소재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관의 측량착오로 인해 1968년 대홍수로 인해 소재지가 물바다를 이뤘다.

이후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2003년 섬진강댐 정상화 사업으로 주민 235세대와 침수도로보강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7월 13만여 ㎡에 택지 85필지 및 기반시설을 마치고 이주가 시작됐다.

그러나 최씨는 “섬진댐 건설전에는 운암면 인구가 1만3천389명 이었으나 지난해 말 1천772명으로 줄었다”며 “신소재지 이주를 마치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껴 인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고 걱정했다.

또한 최씨는 “현재는 대부분 주민의 땅이 한 필도 없는 집이 많아 다시 생활고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며 “쌍암리 앞 제내지를 매립해 주민들에게 분양이라도 해야 주민들의 살길이 생긴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임실=박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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