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음악일까, 즉석음악일까
즉흥음악일까, 즉석음악일까
  • 박재천
  • 승인 2015.01.25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즉흥음악(Free Improvisation)’은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프리재즈(Free Jazz)’가 탄생하자 이에 대응해 유럽에서 생겨난 음악 장르이자 용어이다. ‘프리재즈’는 흑인 고유의 음악에서 태생한 언어이니 ‘자유 즉흥’이라는 의미로 많은 연주가들이 보다 폭넓은 즉흥 연주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즉흥음악’은 기존 음악의 틀을 깨고 일반적인 음악의 경향을 뛰어넘었다. 이에 ‘즉흥음악’을 전위적 문화예술 형태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자유를 누리자니 기존의 질서를 파괴해야했고 조성과 리듬은 파격적으로 붕괴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구조의 멜로디가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즉흥음악은 무엇을 파괴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음악이었을까? 나는 이 장르의 음악에서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연주자로 활동하며 즉흥 음악의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한국어로 ‘즉흥’이라고 해석된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보자. 업무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는 미팅에서 나눠질 이야기의 주제가 정해져 있다. 시간과 약속장소, 이야기 소재는 한정되어 있다. 예정대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면 된다. 이는 일반 대중음악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음악구조에 빗댈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곡을 재생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처럼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 때는 만나는 시간과 약속장소만 정해질 뿐,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이때 즉흥음악처럼 대화가 시작된다. 10분 동안은 고등학교 동창 시절 이야기, 25분 동안은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이야기, 다음 18분 동안은 직장 생활 이야기 등 이렇게 나누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친구와의 대화를 조목조목 레퍼토리화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떤 이야기는 몇 시간 지속하면서 서로 많은 교감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대화의 단절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즉흥이라는 단어를 ‘즉석’으로 바꾸고 싶다. 음악에서 ‘즉흥’이라는 의미를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는 위와 같은 대화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즉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즉흥음악’이라 불리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더 쉬울 수 있겠다. ‘즉석’은 음식의 조리과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우선 잘 준비된 재료를 기호와 조리과정에 맞춰 준비한다. 떡볶이 조리 과정을 생각해보면 떡을 먹다 보니 어묵을 추가해서 먹고 싶다. 이렇게 어떤 재료를 추가할지 무엇을 더 먹을지는 떡볶이를 먹어가며 정하게 된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완벽한 계획을 갖고 시작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준비된 즉흥’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각자 살아가면서 준비되어진 것들이 그 현장에서 서로 풀려나가는 것이다. 왜 이리 길고 복잡한 즉흥음악 얘기를 하는가.

 한 때 아파트의 모든 문은 쇠로 된 방화문이었다. 바깥의 두드림 소리를 들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점잖게 노크를 하면 안에서도 점잖게 ‘누구십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스꽝스럽게 노크를 하면 밖에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이거나 친한 사람의 장난기 섞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급하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밖에서 다급하고 급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철 방화문 바깥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간단한 노크 소리를 통해서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즉흥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즉흥연주’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함께 연주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을 협연하면서도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성격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다. 연주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일상의 삶에서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처음에 던지는 몇 마디 언어 표현을 통해 각자가 살아온 인생의 경과가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성공적인 연주는 음악적인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연주가, 어떤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는지’가 삶과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요건이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좋은 재료, 충분한 조리과정의 숙지가 필요하듯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으로 음악을 연주하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이 내가 오랜 즉흥음악을 통해서 만난 수많은 음악가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과정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가.

 박재천<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