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꾼으로 산다는 것
문화일꾼으로 산다는 것
  • 원도연
  • 승인 2015.01.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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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초반, 문화저널의 편집장으로 문화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정말 많은 응원과 사랑을 받았다. 80년대부터 이어진 민주화의 열기가 여전히 뜨거웠고 문화판에도 이른바 ‘대안문화’라고 불렀던 문화운동이 역동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꿈과 열정은 넘쳐날망정 전업 문화활동가로서 살면서 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참으로 가난하고 고달픈 일이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고 격동의 변화를 겪었지만, 문화저널 편집장 시절은 지금도 내 인생의 전성기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문화판은 상전벽해를 거듭해왔다. 수많은 문화시설과 공간이 만들어지고, 문화와 관광을 지역발전의 핵심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덕분에 몸속에 어쩔 수 없는 흥과 끼를 간직한 젊은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판에 진출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는 우리 곁에 벌써 다가와 있다.

 최근 몇 년간 정책영역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 중의 하나가 문화관광산업의 진흥이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기반 경제가 한계에 부딪히고, 첨단산업화로 일자리가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서비스산업을 미래 지역경제를 이끌어갈 핵심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산업 가운데 지역이 매력을 느끼는 산업이 문화관광산업으로 귀결되는 것은 거의 일반적인 수순이다. 문화산업이 여전히 미개척 분야로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을뿐더러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아한 고용친화형 미래산업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특히 전북의 경우 예로부터 문화예술의 유독 발전해왔고 도시 곳곳에 여전히 문화적 기풍과 유산들이 남아있어 문화산업은 늘 미완의 대기로 기대를 모아왔다. 실제로 많은 정치인들과 연구자들이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첨단산업 분야에 종사할수록, 정책사업을 많이 발굴한 현장형 연구자들일수록 문화산업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산업은 정말 어렵고 복잡한 산업이다.

 무엇보다 도시 전체에 문화적 기풍이 넘쳐야 하고 경제적 가치보다 문화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시민정신이 있을 때 문화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곳을 방문하는 문화산업의 성공모델이다. 프라도 미술관이 오늘의 명성을 얻기까지 스페인의 역대 왕들과 정치인들은 국가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꾸준히 대를 이어 작품을 수집하는데 예산을 투입해왔다. 문화산업은 이런 과정을 누적적으로 거치면서 성장발전하는 산업이다.

 지금 한국의 문화산업은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든 미개척산업이다. 대중문화에서는 한류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문화산업 자체의 갈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를 산업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다. 문화는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발전한다. 문화예술인들이 가진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는 생활문화가 폭넓게 확산하기도 해야 한다. 문화산업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 즐거움을 실체로 전환해 상품으로 전환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인들의 상상력과 대중의 욕구, 행정가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현장에서 씨줄과 날줄로 엮어 때로는 상품으로 때로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고급스러운 작업이 지역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일꾼들의 역할이다.

 이러한 직업군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인 범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문화예술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문화기획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매우 낮은 편이다. 문화시설과 문화공간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거나, 문화센터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문화행사와 강습을 진행하는 일들이 광범위하게 문화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문화기획자가 직업군으로서 명확하게 탄착군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화산업의 발전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다.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문화기획으로 분류되는 인재들이 맘 놓고 자신의 꿈과 열정을 꽃피울 수 있게 제도가 뒷받침되고, 직업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우와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문화기획가들이 꿈과 열정만으로 살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원도연<원광대 교수/문화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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