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견폐요桀犬吠堯
걸견폐요桀犬吠堯
  • 조미애
  • 승인 2015.01.2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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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인협회는 지금 선거 중이다.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이사장을 비롯하여 장르별 분과위원장을 선출하는 투표용지를 며칠 전에 받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처럼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은 중앙문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인데 선거 때가 되면 한 표를 호소하기 위하여 지역을 찾는 후보자들과 친절하게 걸려오는 전화로 모처럼 본인이 한국문단에 이름 한 자 올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민주적인 방법이라는 선거는 1인 1표제이기 때문에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선거가 끝난 뒤에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게 된다. 네 편과 내편을 확실하게 선 긋는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대부분 싸움판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문학상 시상식 자리에서는 인사차 전주를 찾은 후보가 참석하였는데 사회자가 그에게 축사할 기회를 제공하자 누군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북문인협회 선거는 참으로 잘된 사례를 보여주었다.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이 소속된 문학 소모임에서 후보 등록 전에 서로의 의사를 조율하고 존중하여 한 명의 후보만이 등록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추대의 모형을 마련한 것이다.

물론 집단이 활성화되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는 선거가 지니는 장점이 크게 작용한다. 당선된 지도자가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서 사적 이익보다는 구성원들을 위한 공적 이익을 위하여 책임을 수행할 때 사회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인수위원회에서는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정부 등 산업화 시대인 정正과 민주화 시대의 반反에 대한 합合을 모색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과 반은 헤켈의 변증법에서 비롯되는데 이 둘은 서로 모순되며 이러한 관계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합의 실체로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변증법의 핵심은 자기부정에서 출발한다. 진정으로 합을 이루기 위해 철학을 도입하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 정권 초입의 다짐을 잊지 않아야 할 일이다. 최근 청와대가 개입된 일련의 사태를 보면 아직도 합을 위한 모색만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유향이 엮은 전국책에서는 위정자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보면 나라의 장래를 점칠 수 있다고 했다. 황제가 될 사람은 스승을 모시고 왕이 될 사람은 충고할 수 있는 친구를 곁에 두고 지내며 패자가 될 사람은 복종하는 신하를, 나라를 망칠 사람은 노예를 부리면 산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는 ‘척지구폐요 요비불인 구고폐비기주?之狗吠堯 堯非不仁 狗固吠非其主’ 라는 구절이 있다.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짓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짓는다는 말로 우리에게는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폭군 걸왕의 개가 성왕인 요임금을 보고 짓는 것처럼 신하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자기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중국천하를 두고 유방과 항우가 싸울 때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유방의 장수였던 한신을 찾아 온 괴통은 그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제안한다. 항우와 유방으로 이분화된 천하를 세부분으로 나누자는 것이었다. 남쪽은 항우가 차지하고 있고 서쪽은 유방이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동쪽은 한신이 차지하고 있으니 이 땅을 유방에게 주지 말고 한신이 갖고 셋으로 나누어 대세를 관망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과의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를 거절하는데 이후 천하가 통일이 되어 유방이 한고조가 되었을 때 한신은 결국 모반의 죄를 받아 토사구팽兎死拘烹을 당하게 된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한신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후회했다고 한다. 유방은 이어 괴통을 잡아들여 문초하였는데 ‘도척이 기르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한신만 알았을 뿐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라는 변설로써 목숨을 부지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고 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이 불어 가는 쪽으로 눕는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인데 바람이면 어떻고 풀이면 또 어떠할까 싶다. 다만 주인을 위해서만 짓는 한 마리의 개가 되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조미애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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