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중요한 것
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중요한 것
  • 이신후
  • 승인 2015.01.14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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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직업에나 각각의 가치가 존재하고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최근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이 말이 과연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열정페이’ 논란은 그동안 차별을 차이라 우기던 억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연초부터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땅콩회항’부터 백화점 폭행사건, 인턴 착취문제 등 갑질의 끝장판이라 해도 무리 없을 일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사람은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고, 나와 내 이웃을 비교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고, 나보다 못난 사람과 비교합니다. 그래야, 타인과 나 사이의 차이가 생기고, 그 결과 자신의 존재가치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비교를 했을 때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입니다. 그러나 비교는 다른 부정적 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비교의 부작용은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다양성의 결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에 맞추려 고집을 피울 때 발생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과 나 사이에는 ‘차이’가 생기는데 보이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할 때 ‘차별’이 생기는 겁입니다. 성격심리이론에서 사람의 개체 수만큼 성격이 다양하다는 말처럼 다양성을 따지자면 끝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저마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프레임 안에서 판단하고자 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앞서 언급한 땅콩회항들의 문제들은 소위 ‘갑’의 위치에서 보는 사람들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인 겁니다.

 차별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오래 지속될 때 나중에 누군가가 차별을 없애고 공평하게 만들려 해도 너무도 큰 간극을 어찌할 수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차별은 차이가 되어버리고 부당함이 당연한 것처럼 순응하며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청춘이기에 아프다’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불편한 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 드라마 ‘미생’이 시청자들의 그와 같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갑이 을에게 강요하는 ‘차이’를 그것이 ‘차이’가 아니고 ‘차별’이라고 용기 있게 말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 둘의 차이를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을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하면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이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미봉책일 뿐이며 절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자기 위안에 기대어 살아가기보다 거친 세상의 풍파에 다치고 깨지더라도 자신의 온전한 노력으로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여서 지금 당장 변화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 다음 세대에서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전제되었을 때 차별이 사라지고 우리 사회는 통합과 발전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청소년들을 어른들의 정해진 틀 안에 고정시키는 것은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그 각각의 결과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합니다. 차별하지 않고 다름을 차이로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답정너’라는 신조어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돼’라는 신조어는 우리나라의 청소년 교육에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논술에 모범답안이 있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시를 두고 우리는 수학공식을 외우듯 의미를 외우고 있습니다. 답안지에 제시된 답에서 벗어나면 오답으로 간주하는 것은 분명 특정 논리 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차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 청소년들이 과연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하게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행복하냐 묻는 것조차 미안한 일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청소년 우울과 자살, 학교폭력과 같은 것들에서 이미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차별 앞에 행복하지 않는데 나이가 어리다 해서 다를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것이 참 다행이다’라고. 필자는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 사회의 이러한 부조리들을 우리 자식들에게까지 대를 물려 전해줄 것이냐고 말입니다. 영화의 한 대사처럼 현재의 부조리를 우리 후손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청소년들부터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보면 숙명과도 같습니다. 비교를 해야 한다면 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비교의 결과를 차별로 이끌어가지 않고 각각의 가치를 존중하려 하는 자세는 꼭 필요할 것입니다.

 2015년 해가 밝은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새해에는 보다 나은 삶을 사리라 다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긍정적 변화를 향한 결심이 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작년이 참으로 보람차고 의미 있었노라 추억하길 고대합니다.

 이신후<디지털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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