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전쟁영웅을 찾아서 : 김 홍 일
이달의 전쟁영웅을 찾아서 : 김 홍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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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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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홍 일(1898~1980)

김홍일 육군 중장은 1989년 9월 평안북도 용천군 출생으로 오산중학교를 졸업하고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20년 중국 귀주강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1944년 중국청년군사대리참모장을 지낸 후 1945년 4월에 한국광복군 참모장이 되어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선봉장으로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는 등 독립군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3일 만에 북한군이 서울까지 진격해 들어오자 국군은 속수무책 남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된 김홍일 소장은 후퇴하던 국군을 결집하여 3개의 혼성사단을 편성하고 한강 이남 24km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서울을 빼앗긴 아군에게 한강은 전략적인 요지였으며 조국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지역이었다.

김홍일 소장의 진두지휘 아래 국군은 노량진-영등포 일대와 신사리-말죽거리 일대에서 도하하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웠다. 일주일간 치열했던 한강 방어선 전투는 비록 적의 전차 부대에 밀려 후퇴로 끝났지만 초기 전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수도권의 국군 주력을 초반에 섬멸하려던 북한군의 작전 계획에 일대 차질을 가져왔으며,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함으로써 국군의 전략적 후퇴와 미 지상군의 참전 등 차후 작전을 위한 전기가 마련되었다.

한강 방어선이 붕괴된 후 국군과 유엔군은 금강과 소백산맥 일대에 새로운 저지선을 형성하였다. 제1군단장에 오른 김홍일 장군은 예하의 제2사단 16연대와 제25연대, 독립 제17연대를 지휘하여 진천 남쪽 봉화산-문안산 일대에서 전차와 포병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2사단의 남침을 5일 동안 저지하여 적에게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김홍일 장군은 불리한 전력과 전세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에는 육군종합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전시에 급격히 소요가 증대되는 육군 간부의 양성에 전념하다가 1951년 3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주보훈지청 보훈과 ☎(063-239-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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