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인사
  • 이동희
  • 승인 2015.01.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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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이 밝았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으레 지인들 사이에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 인사에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안부를 묻거나 공경하여 예를 표하는 것이 인사요,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말이나 행위가 인사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통성명하는 것이 인사요, 개인의 신분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일을 맡기는 것도 인사이니, 인사는 ‘세상일’을 모두 통괄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인사 중에 연초에 주고받는 인사 또한 삶의 한 요소다. 새해는 특별한 시간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가장 선호하는 인사법이 연하장이다.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대엿새 사이를 두고 있으므로 성탄축하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인사를 뭉뚱그려서 한 장의 연하장으로 대신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명화가의 그림에 간결한 인사말이 인쇄된 연하장을 대량으로 주고받느라 연말연시가 되면 우체국이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러나 이 연하장 인사가 들인 공력만큼 받는 이가 느끼지 못하는 허례허식에 불과하다는 시큰둥하므로 시들해지더니,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간편 문자로 연하인사가 대량으로 발송되기도 한다. 이 역시 주는 이의 정성만큼 받는 이가 공감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인쇄 연하장이건, 사이버상에 오가는 인사말이건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계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거나 무슨 다른 숨은 의도가 없이 보내는 연하장[문자]에는 보내는 이의 이름 석 자 알리는 용도만으로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부박(浮薄)한 현대 사회에서 잊을 수 없는 지인에게 자기의 이름 석 자를 건네며, “나 아직 죽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 있음”을 알리는 기능만으로도 연하장이 효용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경조사에 주고받는 인사만큼 질긴 풍습도 없다. 이 인사는 반드시 물질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유를 달리하는 인사다. 몇 년 전에 직장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내용인즉 “나는 당신 자식 여울 때 친히 가서 축하금을 전했는데, 당신은 왜 내 자식 여울 때 인사가 없느냐?”는 질책이었다. 동료는 그렇지 않아도 정황이 없던 중에 빠뜨린 인사를 어떻게 보충할까 궁리하던 참이었는데, 이 전화에 황당하고 벌레 씹은 감정을 가라앉히는데 여러 날 애를 먹었다고 했다.

 연말연시에 연하장식 인사 빠뜨렸다고 누가 지청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조사에 빠뜨리는 인사는 그 단 한 순간의 미필적 고의일지라도 친구로서의 절교와 업무관계의 단절을 각오해야 할 만큼 절박한 인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경조사를 알릴 때 아예 계좌번호를 함께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실제로 실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점점 인사가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라는 품격(品格)에서, 돈을 주고받는 물격(物格)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즈음 두 가지 인상적 인사가 국민의 심금을 울린다. 하나는 명운을 달리하여 저승길 가는 배우자가 마치 이웃나들이 가듯 평안히 떠나고 보내는 모습이 담긴 다큐영화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의 인사다. 하루를 잘살면 편안한 잠이 오듯, 평생을 잘살면 평안한 죽음을 맞는다. 입으로 이별을 인사하지 않으면서도 평생 사랑으로 이별을 마련해온 노부부의 삶은 그대로 진한 감동인사다. 입으로, 돈으로, 체면치레로 하는 형식인사가 아니라, 평생을 동반하면서 76년을 살아온 삶의 궤적이 바로 인사-사람답게 사는 도리임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거창한 구호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출발한 현 정부의 인사는 그야말로 죽을 쑤는 형국이라서 양식 있는 국민의 심금을 아프게 한다. 도하 각 언론매체들은 이제 겨우 2년을 마친 정부의 최대 악재가 바로 소통부재요, 그 원인이 바로 인사실패라고 지적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오불관언하는 최고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 때문일까? 개인의 신분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일을 맡기는 게 인사일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인사가 틀어지니 만사가 따라 틀어진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구랍(舊臘), 독자 여러분께 올리지 못한 송구영신 인사를 대신하며 이글을 마친다.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의 만사[인사]가 형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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