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을 보내며
2014년 갑오년을 보내며
  • 이한교
  • 승인 2014.12.29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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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갑오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그렇게 간절히 소원했던 제목들은 이미 뜯긴 달력 뒤에 달라붙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소원조차 고개를 푹 숙인 채 초라한 명줄을 지탱하고 있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마치 빼앗기듯 보내는 시간 뒤에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민망한 일들이 더 많았던 2014년은 마치 갈등(葛藤)을 담아 끓이는 냄비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이제 국민은 어지간한 뜨거움에도 놀라지 않는다. 데어도 아파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에 길들어 있다. 이러다간 온몸이 망가진 뒤에야 알아차리는 불행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필자가 생각하는 그 갈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첫째, TV 드라마를 꼽을 수 있다. 방송이란 공익을 우선으로 하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진정시켜야 함에도 막장드라마로 사회의 양극화를 조장했다. 시청률만을 위한 자극적인 드라마,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 묘사도 모자라 폭력을 선(善)으로 해석하는 드라마, 이에 시청자는 마음을 빼앗기고 끝내는 비정상을 정상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방송이란 반드시 시청률이 높다 하여 좋은 프로그램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시청자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중요한 부분이다. 좋은 방송이란 오락성과 교육성을 동시에 충족하고, 지나친 자극성과 선정성은 지양하면서, 시청자가 꿈과 희망을 기지도록 잔잔하게 고양(高揚)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선 당장은 ‘왔다 장보리’ 같은 막장드라마가 시청자에게 호평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시청자를 병들게 한다는 말이다.

 둘째, 사회 지도층이 문제이다. 여기서 지도층이라 함은 재벌 또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이 사회에 이바지한 부분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끊임없이 기본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으로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현실에 대하여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더욱이 돈과 권력 앞에선 법의 잣대가 고무줄 같고, 이들을 통제할만한 사회적 제도장치가 약해 무서워하지 않은 그들을 보고 국민은 박탈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땅콩회항’ 사건에서 보듯 그들은 점점 보통사람과 구분되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마치 봉건시대 신분제도 속 주종관계로 국민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최고의 도덕성을 가져야 할 정치집단의 부도덕성이다. 정치인에게 거짓은 기본이고 폭력은 필수, 그리고 야합은 상식으로 정치 생명연장을 위한 무기쯤으로 생각하는 이 2%의 집단이 문제다.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국민의 머슴이라 입에 발림 하고 있지만,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이들은 왜 치사한 싸움을 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려 하는가를 알고 있고, 자리보전을 위해 진흙탕을 마다치 않고 싸우는 이유를 알고 있다. 왜 그들은 더 교묘한 술책을 부리기 위해 보수와 진보로 나누고, 더 자극적인 종북세력까지 표방해 나라를 흔들어 대는 이유를 국민은 알고 있다. 바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처절한 몸부림이겠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을 통하여 대한민국이 운영되고 그 입김에 의하여 나라의 운명이 판가름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싸움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소위 윗물이요 국민은 아랫물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새우 싸움에 고래등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끝으로 위와 같은 이유로 흔들리는 국민의 의식이다. 더 이상 거짓과 진실이 혼돈된 사회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학연, 지연, 혈연 등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현재 국민이 주인이라면서도 국민은 안중에 없는 나라,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일관성과 원칙을 뭉개 버리는 게 혁신이요, 무조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말하는 억지에 멍드는 나라,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능력자요 자랑이라 착각하는 나라, 법을 어기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큰 행운이라 생각하는 나라, 상대를 무조건 비판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깔아뭉개야 산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무관심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2014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뼈마디 마디가 쑤셔온 한 해였다. 여기다 북한은 칼바람으로 온몸을 파고들었다. 일본은 날카로운 꼬챙이로 아픈 상처를 후벼 팠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는 사이 중국은 저만치 추월해가고 있다. 세계는 이런 우리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다. 2015년은 냉정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 갈등을 조장하는 막장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지도층의 양반 노릇에 기죽지 말고,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에 분노하기 전 냉정하게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조용히 생각하고 행동해야 더 큰 어려움을 면하게 될 거라는 얘기다.

 이한교<한국폴리텍V대학 김제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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