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땅콩 회항
  • 황선철
  • 승인 2014.12.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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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은 재벌 기업 자녀들의 몰상식과 무능을 전세계에 알린 일대 사건이다. 기업 경영에 대한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재벌가 자녀들의 돌출행동이 법 위에서 날뛴 웃지 못할 처사이다. 재벌기업을 마치 재벌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천민자본주의 전형이다. 재벌이 사회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재벌 기업의 세습 관행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일대 변혁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난 5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미국 뉴욕 케네디공항에서 출발하려고 활주로를 향하던 대한항공기를 돌려세웠다. 당시 조 부사장은 승무원의 땅콩과자 서비스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고함을 지르고, 규정을 설명하려고 온 박창진 수석 사무장에게도 소리를 치며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조 부사장은 당시 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400명 승객들은 안중에 없었다. 순수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승무원들에게 행패를 부린 것이다. 비행기 운항의 책임자인 기장의 권한을 완전 무시하고 멋대로 휘두른 월권행위이다.

 박 사무장은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여승무원을 질책하고 있어 기내 서비스 책임자인 사무장으로서 용서를 구했지만 조 전 부사장이 심한 폭언을 하면서 서비스 지침서 케이스 모서리로 자신의 손등을 수차례 때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항공 측에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 진술까지 강요했다고 한다.

 박 사무장은 당장 연락해서 비행기를 세우라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말에 “감히 오너 따님인 그분의 말을 어길 수 없었다”며, “그 모욕감과 인간적인 치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밝혔다.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아닐 수 없다.

 조 부사장의 행태가 항공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처사이다. 봉건시대에 양반이 하인을 마음대로 부려먹던 못된 폐습이 재벌가의 핏속에 체화된 것으로 생각하면 지나친 것일까.

 일반적으로 국내 재벌 3세들은 선친들의 후광에 힘입어 젊은 나이에 경쟁 없이 경영 세습 절차를 밟는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특권 의식에 사로잡히고 회사 재산을 개인재산으로 여기며 부정부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임직원들을 종처럼 대하거나 기계의 부속품처럼 함부로 취급하기도 한다. 기업 경영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의 안하무인식 횡포를 보면서 이 나라 일부 특권층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가졌다 하면 법이고 뭐고 다 개무시하는 일부 특권층의 모습이다. 소수 기득권 세력이 존경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입증하는 것 같다. 존경은 고사하고 여론의 몰매를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재벌의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지만, 재벌이 되기까지 ‘정경유착’으로 정부의 보호막에서 성장하였고, ‘근로자의 희생’과 ‘국민의 암묵적 이해와 협조’ 등이 있었다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재벌도 헌법상 ‘경제 민주화’를 실천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소기업 영역까지 지배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어찌 국민들의 분노와 불만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대한항공기 ‘땅콩 회항’ 사건을 보고도 재벌 체제를 비롯한 특권층의 부조리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 개혁은 개혁의 주체가 역량이 뛰어나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개혁의 대상이 부정부패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황선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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