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 ‘그 섬에 가면’
[신춘문예 소설] ‘그 섬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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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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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 김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원주민 스태프들은 점심으로 제공할 돼지고기와 닭다리를 숯불에 굽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조금 전에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소변보러 가셨나….”

 지글거리는 닭다리를 뒤집으며 스태프가 말꼬리를 흐렸다. 스태프 말대로 나는 김 노인이 소변이나 보러 갔다 오기를 바랐다.

 바다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일회용 접시를 들고 배식대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스태프들이 나눠주는 돼지고기와 닭다리 바비큐, 소시지 그리고 밥과 김치 등을 한 접시씩 받아 간이용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따로 김 노인 몫의 점심을 한 접시 받아놓았다.

 “역시 이곳은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야.”

 정 기자가 포크 쥔 손으로 카메라 액정을 돌려가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곳이 세계 10대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아요, 아마.”

 돼지고기 바비큐를 입에 넣고 우적거리며 김 차장 부인도 한 마디 거들었다. 스노클링만 했을 뿐인데 다들 바다 속 용궁을 다녀온 얼굴들이었다.

 해저절벽은 갖가지 바다생물들이 다양한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노란 연산호와 길게 늘어진 케이블 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주변을 바다거북과 잭피시, 레드스네퍼, 라푸라푸, 타이거 상어, 돛새치, 청새치 떼가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가히 외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만한 포인트가 틀림없었다.

 점심을 마친 사람들은 한가롭게 해변을 산책했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청색 잉크를 풀어놓은 듯 온통 파란색이었다. 정 기자 부부와 김 차장 가족은 바다를 배경으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다.

 “아까부터 어르신이 안 보이네…. 어딜 가셨지?”

 브루스 김이 혼잣말 하듯 김 노인 행방을 물었으나 누구 하나 대꾸하는 사람 없었다. 김 노인 몫의 점심이 담긴 접시에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자, 다음 장소로 옮겨야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 쪽으로 신혼부부 팀 가이드 박이 다가왔다.

 “또? 그 양반 어제도 그러더니만….”

 김 노인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자, 박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여행 이틀째인 어제 오후에도 김 노인은 말없이 사라졌다 슬며시 나타났다. 오전에 전쟁박물관을 다녀온 후 오후에는 맹그로브 정글 리버 보트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다. 뿌리가 땅 위로 솟아오른 맹그로브는 수질 정화기능이 뛰어난 나무라고 브루스 김이 설명했다. 그 맹그로브가 빽빽이 들어찬 강을 보트를 타고 한참 내려가 바다에 이르러 어느 섬에 내렸다.

 그 섬에는 인공 동굴이 있었고, 전쟁 잔해인 녹슨 대포가 동굴 밖으로 바다를 향해 포신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가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김 노인은 말없이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이다. 브루스 김이 노인을 본 사람 있냐고 물었지만 관광객들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김 노인은 혼자였고 우리 팀원들과도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잠시 후 김 노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소리 없이 나타났다.

 “시간 없는데, 일단 출발준비 해놓고 있자고….”

 박은 신혼부부들에게 배에 승선할 수 있도록 짐을 챙기라고 했다. 우리 팀도 짐들을 챙겨 간이 식탁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쉬거나 해변 여기저기를 서성거렸다. 시간이 꽤 지났으나 김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대체 어딜 간 거야? 다들 귀한 시간 내서 여행하는 건데….”

 성격 급한 정 기자가 참지 못하고 불평을 해댔다. 다른 사람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김 노인에게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어르신이 잠시 어딜 간 것 같은데…, 곧 오실 거예요.”

 사람들을 달래고 있었지만 브루스 김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관광객의 소재불명은 가이드로서 치명적인 일일 테니까.

 “자,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어제도 곧 오셨잖아….”

 김 차장이 손바닥으로 사람들의 불만을 꾹꾹 눌렀다. 브루스 김은 굳은 표정으로 숲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김 노인이 굽은 몸을 자축거리며 숲에서 걸어 나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홀쭉한 볼이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얼마나 찾았다고요. 개인 행동하시면 안 된다고 어제도 말씀드렸잖아요. 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시려고…, 어르신, 절대 그러시면 안 돼요.”

 브루스 김이 볼멘소리로 쏘아붙였지만 김 노인은 소변이나 보고 온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팀원 속으로 들어갔다. 일행들은 대체 뭐냐 하는 뜨악한 표정으로 김 노인을 쳐다봤지만 김 노인은 그런 눈들을 개의치 않았다.

 일주일 전 김 차장은 내게 파격에 가까운 제안을 했다.

 “오 기자, 이번에 여름 특집 하나 쓰는데 남태평양 같이 안 갈래?”

 수습 딱지를 떼고 겨우 사회부 맛을 알아가는 기자 2년차인 나에게는 꿈같은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5박6일 일정으로 남태평양 섬으로 태평양전쟁 흔적을 찾아 취재하는 출장이었지만 사실은 특별휴가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서장 인사에 국회의원이 개입된 사건을 제보받아 한 건 터뜨린 것에 대한 보상차원이라고 김 차장이 귀띔했다.

 학창시절 뜬구름 잡듯 나는 종군기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그걸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란 얼마나 가슴 벅차고 보람될까. 그러나 사회부 기자 생활 1년 만에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몇 주 전 광화문으로 시위현장을 취재 나갔다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들러 ‘로버트 카파’ 사진전을 보게 되었다. 살이 찢겨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는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그리고 머리가 총알에 관통돼 흥건하게 피 흘리며 죽어가는 미군 병사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당신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먼 곳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팸플릿 첫머리에 인쇄한 로버트 카파의 말이었다. 그 평범한 말이 눈에 띄는 순간 오래전 꿈꿨던 전쟁의 리얼리즘에 다가가고 싶었던 꿈이 불현듯 생각났다.

 취재 여행이 결정된 후 나는 웹사이트를 뒤져 미국 채널 HBO 미니시리즈 ‘퍼시픽’을 다시 봤다. 다분히 미국 관점에서만 보는 전쟁이었지만 그 리얼리즘만큼은 후한 점수를 줘도 괜찮은 영화였다. 그 태평양 전쟁 현장을 방문할 수 있다니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취재팀은 김 차장과 나 그리고 사진기자인 정으로 꾸려졌다. 가족동반이 허락되었는데 나만 혼자였고 김 차장은 부인과 아들을, 신혼인 정 기자도 아내를 동반했다.

 밤 1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 김 차장 부인은 왕골 비치모자에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원피스를 입었고, 깜깜한 밤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선글라스를 썼다. 정 기자 아내도 핫팬츠에 아르마니 비치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김 차장도 하늘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난방에 채양이 짧고 갈색 리본이 달린 왕골 모자에 짙은 선글라스를 썼다. 이번 출장이 취재가 아니라 관광이라는 걸 짙게 풍기고 있었다.

 취재는 내게 맡기고 김 차장은 즐기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다. 전쟁의 상흔을 직접 관람하고 취재하면서 학창시절 잠시 꿈 꿨던 종군기자의 맛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젊은이, 좀 도와줄 수 있겠소?”

 여행사 직원과 미팅할 장소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옷 소매를 잡았다. 돌아보니 노인이었다. 깡마른 체격에 허리가 굽었고 얼굴과 손등에 빗금을 그어놓은 것처럼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늦가을 가뭄에 바삭 마른 나뭇잎이 연상됐다.

 회색 남방에 같은 색의 바지를 입은 노인은 바짓단을 야물게 양말 밴드에 고정시켰고, 낡은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통에 피난이라도 떠나는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푹 꺼진 눈은 알 수 없는 전설을 간직한 어둡고 오래된 우물처럼 깊어 보였다. 먼 과거에서 달려온 사람처럼 보이는 노인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메모지를 내게 내밀었다. 메모지에는 여행사가 지정한 장소가 적혀 있었는데 우리 팀 약속 장소와 동일했다.

 “그 섬에 가시는 거예요?”

 동반자도 없이 혼자인 노인이 의아스러웠다. 노인은 깊은 우물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 대답이 없었는데 경계하는 눈치였다. 노인에게 여권을 받아 출국절차를 밟는 동안 노인은 내 곁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여권에 적힌 걸 보니 ‘김’씨 성이었고 나이는 구십이 다되었다.

 김 차장과 정 기자 그리고 가족들은 여행에 부풀어서 한 뼘쯤 공중에 떠 걷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내가 김 노인과 나타나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김 노인을 쳐다봤다. 젊고 화려한 여행객들 사이에서 김 노인의 생김새와 옷차림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옆자리에 앉은 김 노인은 비행기가 섬으로 날아가는 동안 잠을 자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뭔가에 놀란 것처럼 화들짝 눈을 뜨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새벽 4시쯤 드디어 섬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은 꽤 길었다. 입국인원에 비해 심사대가 턱없이 적어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고, 게다가 개인물품들을 꼼꼼히 보는 통에 더 지루했다. 남태평양에 왔다는 설레는 기분이 아니었다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행 기간 우리를 담당할 가이드 브루스 김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쿵푸 스타 브루스 리와 달리 브루스 김은 통통했고 후더분해 보여 친근감이 느껴졌다. 후끈한 아열대의 열기가 밀려오는 밖은 아직 어두웠다. 우리는 미니버스에 탑승해 호텔로 이동했다.

 나는 김 노인을 방까지 안내해줬다. 호텔 안내원이 있었지만 김 노인의 깊은 우물을 닮은 눈이 자석처럼 나를 김 노인 곁에 있게 만들었다. 내가 방까지 안내하자 김 노인은 엷은 미소를 지었는데, 의외로 순박해보였다.

 아침 식사는 7시부터였고, 본격적인 투어는 오후부터였으므로 나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후덥지근한 열기와 여행에 대한 기대로 쉬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설핏 잠들었다 깨었는데 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바다는 호텔 앞까지 바짝 머리를 디밀고 있었다. 새벽에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던 바다가 호텔 앞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햇볕이 부챗살처럼 물 위에 자르르 펼쳐져 있었다. 김 차장 가족과 정 기자 부부는 벌써 해변으로 나가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 노인, 혼자 온 건가?”

 김 차장이 아침 식사로 제공된 토스트에 잼을 바르며 김 노인에게 관심을 보였다. 내가 혼자 온 것 같다고 말하자 김 차장은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 여행오기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던데…. 무슨 일로 왔을까?”

 “여행 왔겠지 뭐하려 왔겠어요. 어서 먹어요.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는데 빨리 사진 찍으러 가게요.”

 계란 프라이와 주스 한 잔만 먹고 일어난 김 차장 부인이 김 차장을 재촉했다. 김 차장은 토스트를 입에 급하게 우겨넣느라 김 노인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오후에 브루스 김이 호텔 앞에 미니버스를 댔다. 버스에는 우리 팀 말고도 신혼부부 팀이 더 탔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관광객들은 활기 넘쳐 보였다. 정 기자는 버스에 타자마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김 노인도 느린 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김 차장 부인 말대로 김 노인은 여행객 중 한 사람처럼 보였다.

 남태평양 섬답게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지만 공기는 맑고 산뜻했다. 서울의 찌든 공기에 비하면 폐 속에 들어차는 공기는 신선했고 살아 있는 제대로 된 산소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첫 코스는 시내관광을 한다고 브루스 김이 말했다. 예전 수도였던 이곳은 우리나라 군청소재지 규모로 작았지만 맑은 날씨 탓인지 깔끔해보였다. 햇빛에 비친 풍경은 검소했고 깨끗했다.

 이곳은 어느 곳이든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조금만 달리다 보면 곧바로 바다에 닿았다. 바다는 내가 취재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는 걸 잊게 할 만큼 맑고 투명했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릴 때마다 바닷가로 달려가 마음껏 바다를 만끽했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내가 김 노인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 챈 건 우리가 시내 관광을 끝내고 어느 평범한 다리에 머물렀을 때였다.

 “이 다리 이름은 아이고 다리입니다. 일제 말기 조선인들이 징용으로 끌려와 만들었다는 다리입니다.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들이 아이고 아이고 신음을 토하면서 일했다 하여 다리 이름을 ‘아이고 다리’라고 붙였답니다.”

 브루스 김의 설명을 듣고 관광객들은 잠시 숙연해졌고,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표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다리는 평범하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어서 관광객들은 사진촬영이 끝나자 바로 버스에 탑승했다.

 언제 내렸는지 그 사이 김 노인은 다리 중간쯤까지 걸어가 한참을 다리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이 버스에 탑승했으므로 나는 김 노인에게 가 어서 버스에 타자고 했다. 그때 언뜻 김 노인의 눈가에 물기가 젖어 있는 게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김 노인은 서둘러 눈가에서 눈물을 닦아냈다. 당황스러워진 나는 김 노인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버스에 앉았을 때 문뜩 김 노인이 이 섬과 깊이 연관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 노인 나이는 구십에 가까웠다. 다리가 만들어질 무렵 충분히 이곳에 올 수도 있는 나이였다. 그렇다면 김 노인이 징용으로 이곳에 끌려왔던 사람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전율이 일었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리에 앉아 있는 김 노인을 다시 쳐다봤다. 김 노인은 깡마르고 주름 자글자글한 노인에 불과했지만 평범한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비통한 역사의 현장을 경험한 산 증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영감님이 징용 노무자였다면 이번 여행에서 꽤 큰 대물을 낚은 건데…. 태평양 전쟁과 징용노무자라…, 이거 재미있는데…, 오 기자가 잘 해봐.”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김 노인 이야기를 꺼내자 김 차장이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처럼 눈을 번뜩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노인에게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고….”

 나는 한 발 뺐다. 그저 짐작일 뿐 직접 김 노인에게 확인한 것은 아니니까.

 “일본인 관광객 중에는 2차 대전에 참전했거나, 당시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이 가끔 온다는군. 전쟁 이전부터 이곳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잖아. 징용으로 끌려왔던 우리 선조들이 지금 이곳에 오는 일은 드물 거야. 당시 고생했던 분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지 아마….”

 다음날 아침 로비에서 김 노인을 봤지만 말을 붙이기는커녕 인사도 하지 못했다. 경외심 같은 게 일어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이틀째 일정은 빡빡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관광객들은 공중에 붕 뜬 것처럼 경쾌하고 활기찼다. 그러나 김 노인은 처음 봤던 표정 없는 얼굴 그대로 깊은 우물 같은 눈만 껌벅거리며 따라다닐 뿐이었다.

 오전에는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지역을 방문했다. 먼저 전쟁박물관을 관람했다. 전쟁 당시 격전지를 현장 그대로 야외 전시장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파란 잔디밭에 기관총이 하늘을 향해 검붉은 녹을 뒤집어 쓴 총신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갑각류가 갑이 다 뜯긴 채 내장을 들어낸 듯 철갑이 떨어져 나간 전차가 검게 타 녹슬어 버린 흉물스런 모습으로 엎드려 있었다. 일본군 병원으로 사용했다는 건물은 외벽만 남아 있었다. 불에 타 심하게 그을린 건물 벽은 총탄 자국으로 벌집이 되어 있었다.

 브루스 김이 팔을 펴서 하늘로 총구를 세운 기관총에 각도를 맞추고 허리를 구부려 활 쏘는 포즈를 취했다. 이런 포즈로 사진 찍는 게 유행이라 하자 신혼부부들도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참혹했던 전쟁의 흔적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던 전쟁의 실체가 저 흉물들 속에 압축되어 봉인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흉물들이 에너지를 얻어 거대한 굉음을 내며 세상을 분탕질할 것만 같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이곳에서 큰 전투가 있었지요. 저 아래쪽 섬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그 외 작은 섬과 수도가 있던 이 지역에서도 많은 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건물을 돌아보는 우리에게 다른 팀 가이드 박이 진지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기관총과 전차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동안 어찌된 일인지 김 노인은 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곳 전쟁박물관은 김 노인에게는 처참한 과거의 살아있는 무대였다. 나는 객석에 앉아 김 노인이 주연배우가 되어 펼치는 통한의 연극을 지켜보고 싶었다. 자, 무대 막이 올랐어요. 어서 무대로 입장하세요. 여기가 당신이 70여 년 전 경험했던 생생한 무대잖아요. 어서요.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김 노인은 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고 다리’에서 보였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차 안에 앉아 있는 김 노인은 무슨 결심을 단단히 한 듯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조용히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먼저 차안에 남은 김 노인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권유할 수 없었다. 김 노인 스스로 하면 모를까, 징용자였을지도 모를 김 노인에게 무대에 등장하라고 먼저 권하는 것은 큰 실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끝내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김 노인을 보면서 내 추측이 빗나가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어제 보인 행동만 보면 김 노인은 차 안에 저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코리안 메모리얼 파크에 다녀온 뒤에 나는 내 추측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메모리얼 파크는 태평양전쟁 당시 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당한 우리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었다.

 그곳은 대통령 궁 옆 후미진 곳에 있었다. 들어가는 길은 자갈이 깔린 비포장 도로였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파크 안은 위령탑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바닥에는 대리석으로 태극기를 새겨 깔아놓았는데 오랫동안 관리가 안 돼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우리 팀과 신혼부부들은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나 김 노인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한국인 희생자 추념 평화 기념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을 때도 김 노인은 버스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 구경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번에는 용기를 내 김 노인에게 의향을 물었지만 김 노인은 고개를 돌리고 나를 외면했다. 김 노인이 징용자였을 거란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징용자였다면 메모리얼 가든 앞에서 어찌 저럴 수 있겠는가.

 “그 영감님이 징용 왔던 사람이 아니라고?”

 김 차장이 점심으로 나온 된장국을 뜨다가 오전에 보였던 김 노인의 행동을 듣고는 실망한 얼굴을 했다.

 “아쉽게 됐네. 좋은 취재원 하나 생겼나 했는데…. 그 노인, 그냥 관광하려 오신 분이 맞는가 봐.”

 김 차장은 싱겁게 웃으며 결론을 내버렸다.

 그랬던 김 노인이 그날 오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맹그로브 리버 투어와 여행 삼일 째 용궁 투어 때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가 한참 뒤에 나타났던 것이다. 맹그로브 리버와 용궁 투어 지역은 딱히 징용과는 관련 없는 곳들이었다. 김 노인은 점점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여행 나흘째인 오늘은 난파선 탐험이 예약되어 있었다. 아침에 다이버 숍에 들러 다이빙 장비를 챙겼다. 브루스 김은 수트부터 호흡기, 부력조절기, 공기통과 스노클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장비를 체크해가며 배에 실었다. 오전에 잠시 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 다이빙 교육을 받은 뒤 본격적인 잠수를 위해 난파선이 잠자고 있는 바다로 나갔다.

 잠수장비를 갖춰야 하는 난파선 탐험은 브루스 김이 주도하여 나와 김 차장, 김 차장 아들 그리고 정 기자가 하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과 신혼부부 팀은 가이드 박과 스노클링으로 바다를 즐기기로 했다. 김 노인 얼굴은 어제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섬에 남겠다는 김 노인에게 브루스 김이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어제보다 더 단단히 주의를 줬다.

 잠수 장비를 갖춘 우리 기자 팀은 브루스 김을 따라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난파선은 바다 속 거대한 성으로 변해 있었다. 이미 배의 형태를 상실한 난파선은 바다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곳곳에 산호와 해면, 말미잘들이 붙어 있었다. 흰동가리와 대형조개가 붙어서 제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주변으로 바다거북과 자이언트 만타(쥐가오리)가 돌아다녔다. 선수 부위 거대한 포신도 해양생물들로 덮여 있었다. 선수 우현 앵커체인을 따라 내려가자 어뢰에 맞아 생긴 커다란 구멍에 블랙코랄이 무성했다. 갑판에는 병과 그릇들, 포탄들이 난파 당시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다. 뒤쪽으로 이동하자 파이프라인이 이어지면서 폭격으로 뚫린 브리지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선실과 엔진룸, 보일러실도 보였다. 워낙 거대해서 한 번에 다 관찰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배는 원래 원유수송선인데 길이만 해도 143미터나 됩니다. 필리핀에서 이곳 섬으로 향하던 중 미군의 잠수함 공격을 받았고 다시 비행기 공습을 받아 폭발하여 침몰했답니다. 가장 유명한 난파선 유적지라고 할 수 있지요.”

 섬으로 돌아오면서 브루스 김의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브루스 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섬으로 돌아왔을 때 김 노인은 또 모습을 감추었다. 이런 일이 벌써 삼 일째 반복되고 있어서 사람들은 이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섬으로 돌아온 우리 팀과 박의 팀이 점심 배식을 받고 있을 때 김 노인은 자축거리며 숲에서 나왔다.

 김 노인은 어디를 헤매고 왔는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내가 노인 몫으로 받아놓은 점심을 내밀었지만 김 노인은 물만 마시고 음식은 손도 되지 않았다. 바다를 즐기느라 힘이 빠진 우리들보다 김 노인이 더 피로해 보였다. 김 노인에게 어디를 다녀왔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브루스 김과 박이 재촉하는 바람에 서둘러 보트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는 독이 없는 해파리가 산다는 섬이었다. 세계 유일의 독 없는 해파리를 만나려면 작은 동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물갈퀴와 수경을 들고 수영복만 입은 채 슬리퍼를 신고 좁은 길을 걸어 산을 넘어갔다.

 “어르신, 섬에서 혼자 어디를 다녀오시는 거예요?”

 나는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오면서 김 노인에게 물어봤다.

 “…누구 좀 찾으려고.”

 김 노인은 들릴 듯 말듯 내게 말했다. 여간해서 말을 붙여주지 않던 김 노인이 며칠 곁에서 챙겨준 내게 그나마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할까.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고는 김 노인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누굴 찾으러 왔다고? 대체 누굴 찾으려 저 노구를 이끌고 이 섬에 왔단 말인가.

 이제 여행 마지막 날이다. 김 차장은 취재는 내게 맡기고 가족여행에 전념했지만 나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태평양전쟁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그 생생함을 느꼈다는데 나름 의미를 두고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섬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태평양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다. 그곳 현지인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한 섬은 꽤 컸다. 김 노인의 표정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여행이라지만 5일간의 일정은 고령의 김 노인에게 버거운 행군이었을 것이다.

 “어르신, 어디 편찮으세요?”

 섬에 내려 일부러 김 노인에게 말을 붙여봤다. 김 노인은 알 수 없는 미소만 희미하게 지을 뿐이었다.

 “찾으신다는 분은 찾을 수 있겠어요?”

 “…….”

 “누굴 찾는데 그러세요? 오늘이 여행 마지막이라는 거 아시죠?”

 김 노인은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신혼부부 팀과 가족들은 해변에 남고, 우리 기자들만 현지인 안내를 받아 섬을 취재하기로 했다.

 “미군이 상륙하면서 일본군에게 많이 희생당했지요. 그 피가 바다를 물들여 오렌지빛 같다고 해서 여기를 ‘오렌지비치’라고 부른답니다. 이 섬에서 2개월의 전투로 미군과 일본 사람들이 2만 명가량 죽었다고 합니다. 그랬으니 바다가 핏빛으로 변해 오렌지색처럼 보였겠지요.”

 현지인이 해변을 거닐며 진지한 표정으로 태평양전쟁 당시를 설명했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고요한 백사장을 부드럽게 간질이고 있었다. 여유롭고 평온하기 그지없는 바닷가 어디에도 그 무시무시했던 전장의 상흔은 보이지 않았다.

 기사를 쓰기 위해 나는 현지인의 말을 세세히 메모했다. 정 기자는 주변을 돌며 셔터를 눌러댔다. 섬 안으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골격만 남은 미군셔먼전차와 일본군 경전차가 검붉게 녹슨 채 덩그러니 공터에 나앉아 있었다. 일부러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숲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꺼내와 전시했다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하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김 차장이 일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취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김 차장은 해변에 있는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모양이다. 해변으로 나오자 신혼부부 팀과 우리 팀 가족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 노인은 역시 또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김 노인은 다시 자축거리는 걸음으로 나타날 거니까. 여행 내내 김 노인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지 않는가. 우리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면서 김 노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김 노인은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식사를 끝냈고, 이미 철수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음 목적지는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진다는 해변이었다. 관광객들은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며 바닷가를 거닐거나 사진을 찍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브루스 김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빨개진 얼굴로 숲 주변을 씩씩거리며 왔다 갔다 했다.

 “하여튼 그 영감님 끝날 때까지 속을 썩이네.”

 급기야 정 기자가 또 불만을 터뜨렸다.

 “영감님이 얌전히 계실 일이지 어딜 그렇게 쏘다니시는 거야. 어이, 안되겠어. 일단 이동했다가 다시 오더라도 오후 일정을 진행해야 될 것 같은데…. 우선 먼저 이동하자고?”

 신혼부부 팀 박도 불평을 쏟아내며 일정을 재촉했다. 브루스 김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매번 문제를 일으키는 김 노인을 우리 팀뿐 만 아니라 박의 팀원들도 고깝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남아 있겠습니다. 아무도 없으면 놀라실 것 아니에요.”

 “그래주시면 고맙지요. 스태프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브루스 김은 고마운 표정이었지만, 김 차장과 정 기자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김 노인에게 꼭 물어봐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막연했지만 김 노인을 만나면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여행객들은 짐을 챙겨들고 배에 올라탔다. 김 노인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배가 떠나자 적막해졌고, 이 섬에는 오직 김 노인과 나만 남은 것 같았다. 김 노인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김 노인 몫의 요깃거리와 물통을 배낭에 넣고 무작정 숲으로 들어갔다.

 “어르신! 어르신!”

 야자나무와 종려나무, 파파야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숲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나는 김 노인을 불렀다. 뿌리가 땅 위로 솟은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앞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숲 여기저기에 작은 공터가 나왔다. 무너진 벙커와 휴지조각처럼 찢겨 나뒹굴고 있는 철 구조물들이 보였는데, 전투기 날개 형체를 갖춘 것도 보였다. 전쟁의 흔적들이었다. 숲의 일부가 되어 칙칙하고 검게 변한 철 구조물들은 어둡고 음산해서 마치 공포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내가 찾고자 했던 전쟁의 실체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장이라도 조용한 숲 어디선가 기관총을 쏘아대고 폭탄이 터지고 전차의 굉음이 들릴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마음을 진정하고 나는 숲 안으로 더 들어갔다. 숲은 조금씩 경사를 이뤘고 여기저기 폐허가 된 콘크리트 잔해물이 보였다. 예전에 군용 벙커로 사용했던 곳으로 보였다. 풀과 나무들이 콘크리트 잔해를 뒤덮고 있었다.

 김 노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 노인은 누군가를 찾으러 왔다고 했지만 지금껏 인가나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 노인을 불렀지만 숲은 고요했다. 좀 더 걸음을 옮기자 돌들로 덮인 계곡이 보였다. 천천히 계곡을 따라 산 위쪽으로 올라갔다. 이곳저곳에 굴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파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그 중 제법 큰 동굴 앞에 앉아 물통을 꺼내 목을 축였다.

 동굴 입구에 파괴되어 포신이 험악하게 찢겨진 대포가 포대 위에 깊은 잠에 빠진 듯 엎드려 있었다. 그 위를 넝쿨식물이 덮고 있었다. 밖에서 동굴 안을 기웃거리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봤다. 동굴은 꽤 컸고 깊어 보였다. 혹시나 싶어 김 노인을 크게 불러봤다.

 “…여기야, 여기.”

 정작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흠칫 놀랐다. 다시 김 노인을 부르자 목소리가 더 커졌다. 김 노인의 목소리였다. 대체 김 노인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그리고 이곳 동굴에는 왜 들어왔을까. 나는 천천히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갔다. 천장에 간간히 난 구멍으로 빛이 새들어왔다. 더 걸어 들어가자 희미하게 김 노인의 등이 보였다. 김 노인은 상체를 움츠리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르신, 여기서 뭐하세요?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떨결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동굴 안 광경이 들어왔다. 노인은 군용 삽 크기의 캠핑용 삽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이미 파 놓은 구멍이 보였다.

 “대체 뭐하시려고 땅을 파세요?”

 노인은 누군가 도와주길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폈다. 그리곤 들고 있던 삽을 내게 넘겼다.

 “…젊은이, …나 좀 도와주게.”

 나는 얼결에 김 노인이 건넨 삽을 받아들었다.

 “뭘 찾으시는데요?”

 비행기로 5시간이나 날아온 머나먼 남태평양 한가운데, 그것도 어느 섬 동굴에 들어와 땅을 파는 일이 몹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여기가 분명해, 내 기억이 맞을 거야. 이 동굴이 분명해…. 오랫동안 이 동굴을 봐왔어…. 지난 70여 년간 꿈에서 봐왔는데 잊을 리가 있나. 여기가 바로 그 동굴이야.”

 삽을 받아든 채 김 노인이 파 놓은 구덩이와 흙을 유심히 살폈다. 구덩이에서 파낸 흙에는 군화의 밑창으로 보이는 고무와 방독면 마스크 필터, 녹슨 전화케이블 잔해가 섞여 있었다.

 첫날을 제외하고 김 노인은 과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특히 전쟁과 관련된 것에는 아예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김 노인이 이 숲속 동굴에 들어와 이 전쟁 잔해를 파내는 건 또 무엇인가. 나는 김 노인이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무, 무엇을 찾으시는데….”

 “친, 친구를 찾고 있어. …친구가 여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야.”

 김 노인은 더운 숨을 몰아쉬며 흘러내리는 땀을 남방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왜 이곳에 어르신 친구 분이 묻혀 있는 거죠?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물어볼 수 없었다. 김 노인 스스로 답을 주기 전에는 물어볼 수 없었다. 그걸 물어본다면 오래전부터 잠들어 있던 마법 상자가 열리고 불길한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축축한 흙은 삽날이 들어가자 쉽게 젖혀졌다. 김 노인이 팠던 주변 땅에 삽을 꽂아 흙을 재꼈다. 파낸 흙속에 검은 물체들이 섞여 나왔는데, 부식이 심한 탄창과 수통이었다. 김 노인이 가리키는 대로 나는 마술에 걸린 듯 삽을 땅에 쑤셔 넣었다. 얼굴과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삽을 놓고 앉아 옷소매로 땀을 닦았다. 동굴 안쪽에서 서늘한 습기가 몰려왔다. 배낭에서 물을 꺼내다 김 노인 몫으로 챙겨온 밥과 야채가 보여 김 노인에게 권했지만 물만 몇 모금 마셨다.

 “친구는 어떤 분이셨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친구에 대해 물어봤다.

 “…….”

 김 노인은 말없이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 어디를 팔까요?”

 괜한 말을 꺼냈다 싶어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다시 삽을 들고 일어섰다. 그런데 얼핏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다.

 “…어르신.”

 “…내, 내가 죽였네. 내가 죽였어. 동만이를 내가 죽였어…. 내 친구 동만이를 내가 죽였다고….”

 김 노인은 흐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앙상한 김 노인의 등이 흐느낄 때마다 격하게 흔들렸다. 나는 당황스러워 눈물 닦을 만한 것을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나는 삽 손잡이만 만지작거렸고 손에서 흐른 땀이 손잡이에 흥건했다. 한동안 흐느끼던 김 노인의 울음이 자자졌다.

 “나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 산하 14사단 2연대에 소속된 일본군이었네. 강제 징집되었지. 우리 연대는 이 섬을 방어했어. 무려 두 달에 걸친 전투였어. 석 달이나 방어준비를 했네. 그 일본군에는 나와 같은 조선 청년들이 아주 많았어. …다 죽었지, …다 죽었어. 내가 살아난 건 천행이었어. 난 지금껏 그걸 속여 왔었네. 홋카이도 탄광에 끌려갔다 왔다고 말했지. 이곳에 왔던 조선 노무자들도 많이 죽었지, …많이 죽었어.”

 김 노인의 탄식 섞인 고백 한 마디 한 마디는 폭탄이 되어 내 가슴을 뚫고 날아가 동굴 벽에 부딪쳐 터졌다. 그 폭발음은 굉음이 되어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김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품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 일본군이었던 김 노인은 떳떳하게 관광객들 앞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삽 이리 주게.”

 한동안 앉아 있던 김 노인이 서둘러 일어나 내게서 삽을 빼앗으려고 했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나는 얼른 삽을 들고 일어나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동굴 안쪽으로 박쥐들이 한두 마리씩 날아 들어갔고, 삽날이 흙과 돌조각에 부딪치는 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가 동굴 안을 매웠다. 김 노인은 숙연한 얼굴로 구부정하게 서서 삽질하는 나를 지켜봤다. 캠핑용 삽이라 삽질은 쉽지 않았다. 몇 번 흙을 걷어내고 나면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탄알과 탄피, 부식된 탄창들이 흙무더기에 섞여 나왔지만 인골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 분은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잠시 허리를 펴고 숨을 고르며 김 노인을 쳐다봤다. 김 노인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한동안 땅만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나는 죄인이네, 죄인이야. …총을 쐈지. 내, 내가 총을 쐈어. 오장이 내게 총을 겨누며 도망하는 동만이를 쏘라고 했어. 쏘, 쏘지 않으면 나를 쏴죽이겠다고 했어.”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 찾으시는 거 있어요?”

  한 동안 침묵하고 있던 김 노인이 뭔가 생각난 듯 동굴 벽으로 다가가 어딘가를 더듬었다. 말없이 한참 벽을 더듬던 김 노인이 외쳤다.

 “찾, 찾았어, 찾았다고…. 동만이가 써놓은 거야. 동만이가…….”

 나는 김 노인 쪽으로 다가갔다. 벽은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손으로 더듬자 서늘한 물기가 느껴졌다. 김 노인이 가리키는 벽을 천천히 살폈다. 벽은 검고 칙칙해서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김 노인이 손가락으로 천천히 벽을 가리켰다. 벽에 뭔가 글자 같은 윤곽이 들어났다. 글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했다. 나는 김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발음했다.

 “어. 머. 니.”

 어두운 동굴 벽보다 짙은 검은색으로 적힌 그 글자는 어머니가 분명했다. 가슴에서 뜨거운 뭔가가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아 한동안 나는 말을 잃었다. 이미 땅에 묻혀 흙이나 다름없이 되었을 그래서 현실에서는 전혀 인식할 수 없는 역사속의 사건이 성큼 내 앞에서 환생한 듯 했다. 저 글씨를 동만이라는 분이 썼다면 김 노인이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닐 터였다.

 나는 김 노인이 글자를 발견한 지점부터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작은 삽으로 흙을 파는 일은 더디고 작업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삽 한 삽 흙을 떠낼 때마다 어려운 문제를 풀 듯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놀렸다.

 김 노인도 내 곁에서 내가 흙을 퍼내면 주위 깊게 그것들을 살폈다. 온 몸이 땀에 젖었고, 어깨도 허리도 결렸다. 그러나 뭔가에 취한 듯 김 노인이 지시하는 곳을 파나갔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이곳 섬에서 맞보고자 했던 살아 있는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뿌듯함이 벅차게 밀려왔다. 내가 흘리고 있는 땀과 어깨와 팔뚝, 허벅지와 장단지에 느껴지는 뻐근한 피로가, 그리고 삽날이 파헤치는 흙과 내 앞에서 숨 쉬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김 노인이 바로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끝>

 오상근 作

▲ 오상근씨
 ▶ 당선소감 오상근씨 "소설의 씨앗 전주에서 뿌리 내려 뿌듯"

당선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아직 투박하고 부족한 소설이라는 걸 알면서도 염치없이 소식을 듣고 울컥 눈물이 솟을 만큼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소설이 제 곁에 있었습니다. 감히 넘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장막을 치고 그쪽으로 눈을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또 마법에 걸린 듯 막을 걷어내고 다시 소설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라보고만 있으면 좋으련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만져보고 싶고 그 품에 안겨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많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달리기를 해오고 있습니다. 뛰는 동안 고통스러워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자책합니다. 그러나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면 힘들었던 건 어디로 사라지고 다시 뛰고 싶다는 욕망이 생깁니다. 결국, 뛰는 게 행복했던 것입니다. 달리는 동안 느꼈던 육체의 고달픔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몸의 괴로움은 마음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연료’였던 것입니다.

 소설 쓰기도 달리기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쓰는 동안 몸은 힘들지만 그 고달픔 끝에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마음의 행복’이 있으니까요.

 제 소설은 아직 거칠고 투박하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소설에 손 내밀어 주시고 기회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를 선택해주신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쓰는 일일 것입니다. 많이 공부하고 연습하고 담금질하겠습니다.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쓰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최정주 작가
 ▶ 심사평 최정주 작가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자화상"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신인들의 작품을 읽을 때면 한결같이 하게 된다. 어떤 소설이 소설다운 소설인가를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작법의 문제까지 언급해야 되겠지만, 우선은 참신한 소재, 빛나는 주제, 인물들마다 제 역할을 다하는 성실성, 날줄과 씨줄이 얽히는듯한 촘촘한 구성이 기본이 될 것이다. 요는 소설의 정도를 지켜달라는 얘기이다. 그런 점을 바탕으로 응모작을 읽은 결과 양서영의 ‘아르고스의 눈’과 송나라의 ‘오프라인게임’과 노은희의 ‘관계자외 출입금지’와 오상근의 ‘그 섬에 가면’이 남았다. ‘오프라인 게임’은 숨 가쁘게 읽히는 문장이 돋보였으나, 인터넷게임을 옮겨놓은 듯한 서술과 인물들이 제각기 따로 놀고 있는 듯한 허전함이 있었으며, ‘아르고스의 눈’은 치밀한 구성이 호감을 얻었지만, 주인공이 코스프레 동호인 모임에 참석한 것이나 중년남자의 느닷없는 행위가 설득을 얻지 못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는 중소기업의 사원이라는 관계자의 신분에서 벗어난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입원한 병원에서의 일상을 관찰자의 눈길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관계자와 관찰자의 경계선이 애매하였다. 그러다 보니까 인물이나 사건을 그린 빛나는 부분들이 전체가 하나로 융합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섬에 가면’은 태평양전쟁의 흔적을 찾아 남태평양으로 취재를 떠난 주인공의 눈을 통하여 드러낸 역사의 슬픈 발자취를 그려놓은 역사여행 소설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칠십여 년 전쯤의 친구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김 노인의 행위가 생뚱맞았으나 작품의 곳곳에 깔아놓은 복선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너무 쉽게 읽히는 점이 오히려 신인의 진지한 자세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식과 인물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의 가능성을 믿고 당선작으로 뽑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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