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다
인사가 만사다
  • 노대우
  • 승인 2014.12.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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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인터넷 세상이 되었어도 활자화된 아침 신문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매일 새벽 문틈 사이로 배달된 신문을 접혀진 순서대로 펼쳐 정치면, 사회면 그리고 경제면 순으로 차근차근 보게 된다.

 그런데 연말·연초가 되면 신문을 보는 순서가 달라진다. 앞장의 큰 글씨를 대충 보고 바로 몇 장을 넘겨 조그만 귀퉁이의 인사란을 찾는다. 직장 생활의 종착역을 향해 가면서 그간 소중한 인연을 가진 지인들이 어디로 옮겼을까 하는 궁금증이 앞서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아는 이름을 발견하곤 ‘고생 많이 하셨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당연히 축하하며 미소를 머금기보다는 고생한 생각이 먼저 들고 상념에 잠기게 하는 이유는 왜일까?

 한 조직내에서 언론의 인사란에 나올 정도면 나름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겪었을 수 많은 좌절과 절망, 분노와 회한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바람직한 인사란 좋은 인재를 잘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또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이런 조직은 발전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쇠락하여 퇴출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거대 조직뿐만 아니라 단 몇 명을 고용하는 작은 조직이라도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는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을 잘 알고 있다. 진부한 말인 것 같지만, 조직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말이다. 얼마 전 수도권 소재 모회사의 전라도 출신은 배제한다는 채용 기준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 회사의 해명처럼 담당자의 실수이길 바라지만 자신의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이 지역이라는 것에 좌우되어 채용이 배제된다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여파로 그동안 관행처럼 있었던 소위 관피아의 척결 의지를 현 정부는 내세우고 있다. 조직의 존립 근거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일 것이다.

 관피아 척결도 중요하지만, 너무나 쉽게 간과해 버린 사실이 있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자존심이다. 한 조직의 구성원은 임금의 적고 많음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쳐왔다는 자부심으로 일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수장으로 오시는 분들이 그 간에 살아온 과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업무능력, 청렴도 등 여러 가지의 자질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어 조직 구성원들의 자긍심이 송두리째 뽑히고 사기가 땅에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직원들은 멘붕에 빠지고 자신들은 왜 여기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앞이 캄캄해진다. 수많은 조직원들의 실망은 그 조직이 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게 되고 이는 생산성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존립기반까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조직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그토록 소중한 목숨까지 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가?

 거듭 말하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좋은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써야 국가는 물론 사회도 회사도 번성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인재를 잘 쓰면 나라가 흥하고 잘못 쓰면 망하게 된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평범한 진리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진리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입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사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조직사회에서의 인사는 언제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지만 정실이 눈에 뜨이는 인사는 인사권자에게 큰 멍에로 남는다는 것을 인사권자는 망각하지 말아야 하며 정도에 입각한 공평무사한 인사만이 조직을 건강하게 하고 조직을 화합과 단결 속에 뭉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사는 말 그대로 사람이 하는 것이며 인사가 공평무사하게 이뤄져야 조직이 힘을 얻어 해당 조직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인사권자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인사로 인해 개인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그리고 가족까지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문의 귀퉁이를 장식하는 인사란을 보며 모두가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우리가 그동안 알고 지냈던 그런 분들이 제대로 평가를 받았구나. 저 속에는 수많은 잘못된 경쟁과 모함이 판친 그런 결론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말로 멋진 그리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구나 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비에 세상을 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을 먼저 바꾸는 일을 하지 못한 회한을 담은 글이 생각난다. 내가 속한 자그마한 집단에서 나는 진정 비난받을 인사는 하지 않았는지 자문해 본다. 나부터 “인사가 만사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잘 실천하고는 있는지 먼저 반성해 볼 일이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는지…”

 노대우<국민연금 전주완주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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