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가령의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가령의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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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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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파선은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 깃발이, 갑판이, 선미가 부서졌다 아니 실제론 뼈댄 안 부서졌다 해일에 부딪쳤고 태풍에 부딪쳤다 그것들은 부딪침으로 섞인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지금은 멀미 중이다 난파선이 나를 껴안으려 한다 난파선이 쏟아내고 있다 방향키도, 서랍도, 포크도, 변기도 꾸역꾸역 쏟아낸다 나온 것들이 서로 섞여 흐른다 너는 흐르지 못했다 아니 실제론 너는 쏟아내지 못했다 그 이름이 바다를 안는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해파리도 해초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자갈벌엔 구름이 있다 햇살도 자잘하다 바라보면 바다는 여전히 투명하다 힘차다 뱃전에 앉은 바다새가 바다를 바라보고 그 옆 나는 구토를 하고 있다 두통이 자갈벌에 처박힌다 파도 소린 진행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얀 소리가 부서진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바다와 별거 중이다 부서져 나간 글자, 흔적이 없다 폭우에 뜯겨나간 이름, 보고싶다 난파선 뒤에서 바다를 당기며 오른쪽으로 몸 기울어진 수평을 맞춘다 해일과 태풍이 무수한 소리를 숨기는 곳 짠 내음의 바다가 반짝 후미에서 빛났다 그 위 작은새 한 마리 깃을 내렸다 민들레 홑씨 둥글게 부풀어 날자 난파선은 난파선이 아니다 난파선 앞에서 난 파산하고 있다 바람을 들고 나는 석양에 기대 난파선에서 속을 푼다 조개껍질 몇 개가 통장 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앉은뱅이 파편 조각 하나가 열 번째 바다로 가고 있다 물결이 지느러미가 된다 누구의 바다 깊은 곳에서

 김가령 作

▲ 김가령씨
 ▶ 당선소감 김가령씨 "시의 안팎을 자신있게 휘몰아 쓸 것"

벽은 흰빛 소리를 냈다. 집은 늘 장소를 옮겼다. 길을 잃기 싫어서 언제나 시에 기대어 있었다. 나의 시는 때론 자작나무 숲길이 되고 때론 회색 빌딩숲을 걷게 했다. 이러다 시를 못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시의 언저리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소중했다.

 감기가 왔다. 한 번도 끙끙 앓지 않았던 꿈을 꾸었다. 어깨를 토닥거려주던 손길에 눈을 뜨고 아련함 속에 남아 있었다. 미련을 못 버릴까봐 꿈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시의 안과 밖을 좀더 자신있게 휘돌아다니고 싶다.

 늘 따뜻한 격려와 함께 시의 길을 바르게 걷게 해주신 영남대 이기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 정신을 꿰뚫어 주시던 대구가톨릭대 한국어문학부 장도준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사랑하는 문심회, 영남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문우들과 대가대문학회 회원들께도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의 가족, 특히 첫 독자가 되어준 근희와 근우에게 붉은 산수유 열매를 전하고 싶습니다.

  견줄 수 없는 벅참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조미애 선생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젠 온 힘을 다해 정성으로 쓸 것이며 결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 조미애 시인
 ▶ 심사평 조미애 시인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의 재탄생"

신춘문예를 통해 한국문단에 도전하는 것이 문학을 소원하는 사람에게 있어 얼마만큼 소중한 일인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면 잘 알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146명의 시 584편을 심사하였다. 응모한 작품들을 통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조탁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당선작을 선정하는데 고민이 컸다. 고단한 일상을 단순하게 토로하기보다는 시어로 승화하여 길어 올림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느리게 진행하는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문학이 지니는 장점일 것이다.

 당선작으로 김가령의〈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를 뽑았다. 몇 번을 읽었다. 뒤집혀 진 난파선과 파도, 그리고 투명한 바다의 고요함이 수많은 사건들의 역사가 되어 되돌아 왔다. 모든 기울어짐에 대하여 수평을 맞추고자 조절하는 모습은 곧 시의 몸부림이 되었다. 파편이 된 시적 소재를 다듬고 맞추어서 전하고자 하는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찾아내고 사물 저 건너편까지 드려다 볼 수 있는 역량을 더하여 이 땅의 좋은 시인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떠나지 않으려 집을 짓는 새가 새벽을 기다리는 김길전의〈가을 나무〉와 모래가 모래 속에 익사하는 모래의 역사를 담은 이명옥의〈모래시계〉도 잔상이 큰 작품이었다. 구윤상의〈새벽시장 콩나물 국밥〉과 최한나의 〈그녀, 병아리 되어 가다〉, 임미성의 〈우렁이 이야기〉등에서 공감하게 되는 시적 이야기 또한 반가웠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시선의 깊이를 더함으로써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응모한 예비문인들의 노력과 정성에 큰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조미애 <국제펜클럽한국본부와 한국민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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