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사회
갑질하는 사회
  • 조미애
  • 승인 2014.12.23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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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였다. 수면 아래에서 쉬쉬하며 주어진 상황을 견디어왔던 을의 모습이 이러저러한 형태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자신의 생활과 처지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하여 공감하기도 하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한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미생〉은 갑들의 전쟁터에 던져진 을의 고군분투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장그래’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 잃어버렸던 직장인의 의미와 동료 간의 우정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어 감동이었다.

땅콩 때문에 국토부가 비상이라고 한다.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의 조현아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조사하면서 부실과 봐주기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사주의 딸로서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자사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도 모자라 승객의 안전을 무시한 채 규정을 어기고 회항하여 사무장을 내리게까지 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연말 한파와 함께 갑질 논란으로 불어 닥쳤다. 이 사건은 ‘정윤회 씨의 청와대 국정 개입 사건’과 함께 과연 누가 더 ‘갑질’을 한 것이냐는 물음으로 회자되었다. 지난해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어 모 대학에 합격한 정윤회 씨의 딸은 부적절한 방법으로 승마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위 ‘공주 승마’ 의혹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화지소유생야禍之所由生也 생자섬섬야生自纖纖也’라고 하였다. 화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커지기 전에 막아야하고, 작고 사소하다는 생각만으로 미처 대비하지 못하여서 큰일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말이다. 개미굴처럼 작고 사소한 일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쉬운데 그 위협은 매우 커서 지반이 무너질 수도 있기에 아주 위험하다. 일이 커지기 전에 방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상사 작고 사소한 일에 소홀하지 말 것이며 조금씩 변해가는 상황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조금씩 변하는 상황은 너무도 작고 느리게 변화되어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잘못할 수 있으며 뜻하지 않은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일들이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경우라면 상황에 대한 초기관리를 보다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이를 깨달아 뉘우치는 것에도 예禮가 있는 것이다. 본래 뉘우침은 허물에서 나왔지만 진심으로 잘못을 빌고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오히려 이를 길러 덕성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이다.

순자荀子는 일이 닥치고 나서야 방법을 생각하는 것을 낙오라 하고 우환이 생기기 전에 우환에 대비하는 것을 예견이라 하였다. 낙오되면 일을 성사시킬 수 없으며 예견이 있으면 우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환이 닥친 후에야 방도를 생각하는 것은 곤궁이라 하였으며 곤궁하면 역시 우환을 막을 수 없다. 평소 몸가짐이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면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의 일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적은 일에서도 많은 일을 알 수 있으며 미묘한 것으로부터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수많은 흔적을 남긴 사건들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모든 에너지는 많은 곳으로부터 적은 곳으로 이동한다. 갑과 을이 있었기에 체제가 만들어지고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갑은 을보다 분명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더 많이 가진 갑이 을을 배려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을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을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행위 할 때 갑과 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갑과 을은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던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지만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라고 했다.

  조미애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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