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장상록
  • 승인 2014.12.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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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한 장의 비극적 사진이 있다.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의해 포승줄에 두 손이 묶인 체 끌려가는 일단의 무리. 그 중에 한 명, 최린(崔麟)이 있다. 그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다. 이광수(李光洙)와 최남선(崔南善)이 갔던 그 길에 최린도 함께 했던 것이다. 훼절(毁節), 우국지사(憂國之士)가 친일파(親日派)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비극의 완결판 이다. 한국인 누구도 이완용(李完用)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일제의 주구(走狗)로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 그는 죽을 때 자신의 후손 중에 일본 총리대신이 나오길 희망했다고 한다. 이렇게 완벽한 민족반역자에게 우리가 가지는 감정은 단순하다. 한국 근현대사가 가진 고민은 이완용과 같이 완벽한 민족반역자가 아니라 최린과 같은 인물의 존재에 있다.

  최린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지만 그가 본격적 친일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26년 9월 일제(日帝)의 경비지원으로 떠난 구미 여행부터로 본다. 당시 파리에 체류 중이던 여류화가 나혜석(羅蕙錫)과의 염문이 떠돌던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광수나 최남선과 다른 것은 반민특위에서의 행태 때문이다. 변명과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던 다른 친일파들과는 달리 최린은 이렇게 참회했다. “민족 앞에 죄 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

  지금 이광수나 최남선이 아닌 최린을 얘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그의 반성 때문이다.

  반면 많진 않지만 이런 인물도 있다. 일진회(一進會)에 참여해 민족에 죄를 지었지만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고 독립운동가로 세상을 마감한 전협(全協)과 같은 인물이 그렇다. 그는 대동단(大同團)을 결성해 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는 거 뭐 별거 있어’라고 하지만 정말 제대로 사는 삶은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한 때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에 이르는 하나의 지침서로 각광을 받던 베스트셀러다. 그런가 하면 국내외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던 사람의 삶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도 적잖게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의문이 들었던 것이 있다. ‘과연 저게 끝일까’

  유감스럽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그의 근황은 책속에서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다만, 그가 마냥 웃을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유롭지 못한 책임은 엄존하기 때문이다. TV에 등장해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얘기하던 이들 중 상당수도 성공을 말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은 다르지 않다. 솔론(Solon)은 리디아(Lydia)의 왕 크로이소스(Kroisos)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크로이소스는 솔론에게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가 솔론에게 기대한 답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주인공은 바로 폐하십니다.’ 하지만 솔론의 답은 왕의 기대와는 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죽을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물음에 답할 수 없습니다. 누가 죽기 전에는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크로이소스는 후일 페르시아(Persia)의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에게 완패해 화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인다. 그는 이때 큰 소리로 외친다. “오! 솔론, 솔론, 솔론” 처형 장면을 지켜보려던 키루스는 형 집행을 중단하고 이유를 묻는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얘기가 있다. 다만 키루스의 자비를 얻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그가 행복했을 리는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솔론 역시 행복한 임종을 맞이하진 못했다는 사실이다.

  삶이 소중한 것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시인 임보는 이렇게 노래한다.

  “세상의 값진 것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리, 사랑도 우리의 목숨도 그래서 황홀쿠나.”

  최린과 크로이소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장상록 /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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