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
  • 박세훈
  • 승인 2014.12.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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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으로 한 해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그 말이 실감 나는 한 해로 기억될듯하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세월호의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를 안겨 주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또 다른 세월호와 같은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항공사 부사장의 마카대미아 땅콩 회항 사건으로 조용히 반성하며 새해를 준비해야 할 연말이 시끄럽다. 문제는 1등석에 탑승한 회장의 자녀인 부사장에게 땅콩을 봉지째 건넨 데서 비롯되었다. 회장의 자녀가 아니라 하더라도 손님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베풀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땅콩을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건넨 것이 활주로를 향하던 비행기를 되돌릴만한 사건이었는지 쓴웃음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사건은 우리 국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어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뉴욕 타임즈도 한국 경제성장의 그늘을 생각하게 하는 기사를 또 게재하면서 이번 항공사 부사장의 땅콩 스캔들은 한국 재벌문화의 뿌리 깊은 문제를 보여주며, 한국 재벌가족의 오만함의 극치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공사이고 그 항공사의 임원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2, 3세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이나 목중무인(目中無人)인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는 일이어서 우리 국민들은 무덤덤하게 받아 드리고 있지만,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선진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린 중대한 사건이다. 따라서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사회의 지도층은 그 신분에 상응하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부강한 나라나 명문가는 지도층이나 윗사람이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올해에도 이른바 우리 사회 지도층의 비도덕적인 갑질 행동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치인, 법조인, 교수, 의사, 재벌가 등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 일부의 행동이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노블레스만 있고 오블리주는 없었던 것이다. 사회 지도층은 사회를 이끌 지도자가 아니라 사회의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제 사회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여주기는커녕 허탈감이나 분노를 안겨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급속한 사회발전으로 지도급 인사들은 많이 늘었지만, 우리 조상들이 어려운 가운데 지켜왔던 선비정신이나 화랑도 정신 등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도덕적 덕목이다. 지금과 같은 오블리지 없는 노블레스, 즉 의무를 다하지 않는 지도층이 계속하여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절대로 밝지 않다.

 이번 땅콩 회항 사건으로 당사자는 물론이지만, 항공사도 엄청난 재정 손실을 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무리한 방법으로 사건을 은폐하기보다는 책임자들이 책임을 지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국민들이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세월호의 참사로 귀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많았으면 한다.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보자.

 박세훈<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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