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고 훈훈한 그때 그 인연
소중하고 훈훈한 그때 그 인연
  • 이용숙
  • 승인 2014.12.18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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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동학농민혁명 2주갑이라는 2014년도 열흘 남짓 남았다. 흔히 세월 가는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데, 정말 한 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설레임과 소망으로 시작한 날들이 아쉬움과 허무로 닫히는 것인가. 속절없이 세월을 허송하는 야속함 덕분인가 세밑이 더욱 시리다.

하나하나 들추기조차 소름 끼치는 일들이 한해 내내 줄곧 이어져 왔다. 과연 우리가 희망과 비전을 얘기해도 되는 것일까. 끔찍하다. 더구나 요즘은 우리 지역에 난데없는 폭설과 한파가 몰아닥쳐 시린 가슴이 얼어터질 지경이다. 추수가 끝난 논밭에 양파를 파종해야 하는데, 지난 가을 이후 비와 눈이 잦아서 흙이 마르지 않아 시기를 놓친 농심은 또 한번 찢기고 있다.

이 추운 세밑,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줄 한 줄기 빛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살이의 작지만 소중한 행복,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터전은 어디일까.

 
‘넷골 사람들’의 추억

내가 살던 아파트는 고작 네 동의 작은 규모이다. 1동은 50평 넘는 중대형, 2?3동은 40평 가까운 중형, 우리 집은 4동으로 단지 내 영세민(?)이 모인 27평형이다. 그 가운데 나는 7?8호에(제4라인)에 입주했는데, 상대적으로 동질성이 많아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공식 모임의 명칭은 공모를 통하여 ‘넷골 사람들’로 정하고, 월 1회 정기모임을 갖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모였다. 1?2?3동에는 라인이 두세 개인데, 4동에만 4라인이 있다. 모두 15층인데 우리 라인은 미관을 고려하여 14+9층으로 고작 23세대다. 주부와 아이들까지도 금세 가까워졌고, 도심의 각박함이나 살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요한 것은 그때 그때 모임에서 합의해 나갔다.

한번은 6층에 사는 부부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내가 7층을 누르자 자신들이 이미 눌러놓은 6층을 취소한다. 에너지 절약도 하고 운동도 할 겸 한 층은 걸어서 내려가겠단다. 건전한 생각에 건강한 웃음을 지닌 이웃과 함께 사는 내가 행복하다. 우리에게 인사는 남녀노소 없이 ‘먼저 건네기’다. 어른이라고 어린이에게 받는 게 아니고 함께 나누기인 것이다.

모임에는 23세대 중에서 적어도 15인 이상이 모인다. 구성원의 직업도 다양하다. 법조인?의료인?은행?경찰?교육계?자영업 등 크고 작은 일에도 정보를 교환하고 자문을 구하지만, 더러는 전문인의 소중한 특강도 청취한다. 언젠가는 인근 행정기관의 회의실을 빌려 넷골의 전 가족이 모여 문화강좌를 가진 적도 있다. 단언하건대 아파트의 가치와 품격은 그 규모와 평당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입주자들의 삶의 향취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다. 익명성과 폐쇄성을 기반으로 저마다 고립되고 단독화 되기 쉬운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나눔과 배려를 실현하며 공동체로서의 삶의 양식이 가능함을 체험으로 배운 것이다.

  그 덕에 한번 회원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직장 따라 타 지역으로 떠나도 대개 모임을 함께 한다. 당연히 신입은 대부분 동참한다. 나 또한 오래 전에 도심 생활을 접고 산골마을로 옮겨왔지만, 그 모임만은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따뜻한 인연에 감사한다.
 

상추 맛나게 먹었습니다.

무슨 학술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강천사 입구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관광객도 끊어진 한적한 시각, 트럭 한 대가 등장하여 목쉰 소리로 외친다. “상추 한 박스에 6천원짜리가 2천원!” 살펴보니 신선하고 청결해 보였다.

트럭에 남은 10박스를 모두 샀다.

어쩌다 밖에서 물건을 사들고 갈 때마다 노상 지청구를 듣곤 했는데 이번만은 예외였다. 1박스의 상추를 2등분하여 20개의 포장으로 재분배, 집집마다 한 묶음씩 배분했다. 23세대 중 외출하고 부재중인 집을 제하면 그것도 남는다. 소위 일천원의 선물인 셈. 다음 날 엘리베이터 소식란에 “상추 맛나게 먹었습니다.” 는 글이 폭주. 저도요, 저도요. 그리고 저희도 나눌게 있습니다.

한번은 남해 다랭이 마을에서 쉬다가 미조항을 찾았다. 전국 갈치의 60%가 출하된다는 수협 어판장의 새벽. 적절한 크기 <40미>의 갈치를 한 상자 8만원에 구입했다. 스치로폼 박스에 넣고 얼음으로 포장하니 안심이다. 2마리씩 포장하여 20봉지를 만들었다.

내가 넷골 가족에게 전한 건 갈치 각 2마리. 구입가로 따지면 고작 일금 4천원의 선물인 셈이다 단 신선도는 시내 최고가의 매장보다 나았으리라. 갈치를 나누고 나서 되돌아오는 선물에 당황했다. 한우 갈비 세트부터 떡과 과일, 건어물에 고급 차와 양주까지-. 참 세상에! 이리도 실속 있는 거래가 또 어디 있는가.

쌓인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어서 들에 나가서 상큼한 향내를 자랑하는 냉이를 캐야겠다. 늦가을이나 이른 겨울에도 양지에 파란 냉이가 눈에 띄지만 별로 매력이 없다. 향이 없기 때문이다. 야생의 채소 하나까지도 혹한과 폭설을 견디고 나서야 향기가 우러난다. 얼음장 밑에서 자라는 미나리, 그 아삭하면서 달콤한 새 봄의 맛이 그립다.

우리네 삶이 거칠고 시려도 참아내야 하리라. 번뇌야 말로 참 스승이라니-.

오늘의 시련과 혹독함이 진정한 삶의 향기로 피어나기를.

  이용숙<시인·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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