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와 時間
인터스텔라와 時間
  • 김종일
  • 승인 2014.12.15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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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저녁 기말고사를 마친 막내 손을 잡고 인터스텔라를 보러 갔다. 언뜻 듣기로 상대성이론을 잘 표현한 SF 명작이라 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역시 할리우드영화답게 우주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러브스토리로 정의하는 편이 좋겠다.

 인터스텔라에는 과학도 있고, 창작도 있고, 과장도 있고, 오류도 있다. 지면이 좁아 많은 것을 다룰 수는 없으니 여기에서는 ‘시간’에 관해서만 복기해보도록 하자. 먼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의 변화, 다시 말하면 상대 속도가 증가하거나 중력이 강해지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르는 현상에 관한 묘사를 정성적 측면에서 보자면 옳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과 다르다.

  영화 중반부에 블랙홀 근처의 어느 행성의 바다에 착륙하는데 그곳의 중력이 지구의 130%이며 또 그곳의 한 시간이 지구의 7년이라는 대목이 있다. 순간 의아해서 잠시 암산을 해봤는데 그 정도 시간 차이가 발생하려면 그곳의 중력이 최소한 지구의 1억 배는 돼야 한다. 그런 행성이라면 사람이 서 있기는커녕 자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순식간에 으깨져 버릴 것이며, 대기층도 무시할 정도로 옅을 것이며, 화학은 잘 모르지만, 그 높은 압력을 이기고 과연 물이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류라고 하기는 그렇고 영화의 볼거리를 위한 창작이자 과장일 것이다. 또 그 정도로 블랙홀과 가까이 있다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높이의 파도는 충분하지만, 파도의 주기는 훨씬 더 짧아져야 한다고 본다.

 블랙홀의 존재를 제외하고 웜홀을 통해 이동한다거나 블랙홀을 통과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영화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허구이다. 새로운 차원을 통해서 여행한다는 웜홀은 아직까지는 논리적 추론의 산물이다. 또한, 필자의 견해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논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조차도 의문을 갖는 물리학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필자 역시 ‘시간’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3차원 실공간상에서는 실존하지 않지만, 편의상 사용하는 허구의 개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시간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고 또 늘 시간에 쫓겨 사는데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과학적 근거 두 가지를 살펴보겠다. 4차원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킨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은 실공간이 아니라 허수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허수공간은 영어로 상상의 공간(imaginary space)를 말한다. 시간을 이렇게 처리하게 되면 수학적 계산이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허수의 시간에 물리적 실존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양자역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에 실존하는 것은 관측 가능(observable)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어떤 물리량이 관측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응되는 에르미트 연산자(Hermite operator)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양자역학이 완성된 1930년대 이후 시간 연산자를 정의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모두 허사로 끝났다. 현재의 결론으로는 시간 연산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은 관측 가능한 물리량이 아니며 이에 대응되는 물리적 실재가 없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만약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자연의 다른 구성물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만약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존재를 알 길이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물리학의 어떤 이론에서도 시간은 어떤 자연의 구성물과도 어떠한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속담은 사실과 다르다.

  시간은 자연의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물리학적으로 따지만, 존재하는 것은 자연의 구성물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고, 그 상호작용에 의해 자연의 상태가 변하게 된다. ‘시간’이라 함은 상호작용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에 우리가 임의로 붙여놓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 물리적으로 말하면, 시간은 계수일 뿐이다.

 어쨌든 시간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니깐 최대한 오래 살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찾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헛수고다. 영화에서처럼 딸보다 젊은 아빠가 충분히 가능하고 이와 같은 시간의 상대적 차이는 발생할 수 있지만, 고유 시간이라 부르는 자기 자신이 가지는 자기만의 시간은 무슨 용을 써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연은 공명정대하다.

 김종일<전북대 교수/호남태양광테스트베드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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