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받침대
시간의 받침대
  • 이동희
  • 승인 2014.12.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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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나라가 무슨 해괴한 권력놀음을 구경하느라 날이 지샌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하는 말 다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세상이다. 그러니 표를 얻으려고 감언이설로 한 말 다르고 표를 얻은 후에 자기 입으로 한 말을 모르쇠해도 아무렇지 않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사회-국민의 인격 수준이 이렇게 저급하게 타락했는지 두려움마저 든다.

 언론은 말을 만드는 공기이고, 언로는 그 만든 말이 유통하는 경로라지만 이 경로에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점잖은 자리에는 오르기도 민망한 왜말 찌꺼기 ‘찌라시’라는 말과 문건을 한 나라 최고 권력기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며 그것을 생산했다니 뭘 더 말하랴. 이뿐인가? 무슨 시정잡배의 안살림도 아닌데 ‘문고리 3인방’이 나오고, 왕조시대도 아닌데 중국 후한 말 전횡을 일삼은 환관을 지칭하던 ‘십상시’가 버젓이 언론을 타고 언로를 지배하는 형국이 장기화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 어느덧 2014년도 세밑에 이르렀으니,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정확하고 똑바르기가 시간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 모양이다. “역사는 일정한 방향을 지닌 시간으로서 시간의 붕괴-시간이 점적인 현재의 연속으로 흩어져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면서 “이때 [역사의]방향을 정해주는 것은 자기이다.”(한병철『시간의 향기』에서)라고 덧붙인다.

 어떤 ‘자기’인가? ‘자기의 항구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지속시키는 자기-‘나’다. 그러자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사색하는 삶이요, 생각하는 자만이 시간의 받침대를 만들어 ‘현재의 연속으로 흩어져버리는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점적인 상태로 흘러가버리고 마는 현재를 붙잡아 항구적인 역사로 유지시킬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생각하는 자기’뿐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지지난 대선 때 이미 고인이 된 김근태 의원이 했던 말이 뇌리에서 잊히질 않는다. 정동영 대통령 후보 선대위원장으로서 “매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슴에 덜컹덜컹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뤄낸 우리 국민이 노망든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경준도 들어오고, 이면계약서가 공개되고, 국민들 상당수가 BBK의혹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데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고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갈 기미를 안보이니 답답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역사의 방향을 정해주는 것은 ‘자기의 항구성’을 믿는 국민 제 각각의 몫이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역사의 방향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수 있다. 그렇게 사유하기는 고사하고 ‘부자 만들어준다’는 천박한 물질편향주의에 솔깃한 유권자들이 정신 줄을 놓은 격이다. 그 결과 어찌 되었는가? 역사의 방향을 정해 줄 시간의 받침대를 만들지 못한 국민들은 두고두고 물질[세금]의 받침대로 붕괴한 시간[역사]의 오류를 씻어내야 하는 부채를 떠안게 되지 않았는가?

 지난 대선이라고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며, 정당정치는 실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대의다. 전 정권의 실패를 두 눈 뜨고 똑똑히 목격한 그 국민[유권자]들은 실정을 심판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실패한 정권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역사의 물꼬를 바꿈으로써 현재로 흩어져버릴 시간의 붕괴를 막아낼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결과로 바로 전근대적인 궁중비화-권력암투를 21세기에도 속수무책으로 목격하는 일은 서글프기만 하다. 이 어찌 국민[유권자]의 자업자득이요 사필귀정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명말 육소형이 쓴「취고당검소」라는 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권세 있는 사람의 문간을 바삐 드나들면 저는 영광스럽게 여겨도 남들은 몰래 욕을 한다. (奔走于權幸之門, 自視不勝其榮, 人竊以爲辱)” 숨어서 욕만 할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연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마는 역사의 파편화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항구적인 자기[나]’뿐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그것이 가능하다.

 일 년 동안 저의 칼럼을 정독해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한 뜻으로 시 한 수를 올려 송구영신의 인사를 드리려 한다. 좋은 시간의 받침대를 만드시길 바란다. <우리는 잠잘 곳이 있네, 아이도 하나 있네/ 내 아내!/ 우리는 일도 있네, 심지어 둘이서/ 또 햇빛도 비도 바람도 있네/ 다만 사소한 게 하나 없으니,/ 새들처럼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없네>(R. 데멜「일하는 사내」전문)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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