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담뱃세 인상안에 반대했는가
나는 왜 담뱃세 인상안에 반대했는가
  • 김성주
  • 승인 2014.12.04 2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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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대한민국국회는 통법부란 오명을 뒤집어쓴 적도 있었다. 정부가 내놓은 법안을 그냥 통과시켜주는 역할을 해온 것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요즘의 국회는 매년 수 천 건의 법안을 발의하고 심의 의결하는 입법부로서의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예산부수법안'이란 괴물이 통법부의 망령을 되살려놓았다. 미국은 예산이 하나의 법안이라고 한다. 미 의회는 누구에게 얼마나 세금을 매길 것인가 결정하는 세입위원회가 세출위원회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정부예산안에 세입관련 법안을 예산부수법안이라 매달아 처리하는 기막힌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어디 헌법에 예산은 12월2일에 통과시키라고 나와 있는가? 국민의 입장에서 철저히 정부예산안을 심의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삭감하고 늘리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소위 예산부수법안이란 것은 3권 분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국회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행정부가 편성권을 갖고 있는 예산안에 국회가 입법권을 갖고 있는 14개 법안을 묶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예산안이 목성이고 14개 법안은 목성에 딸린 위성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국회는 통법부란 오명을 넘어 아예 입법권을 통째로 넘겨준 날로 국회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부의 담뱃세 인상안은 실로 거칠 것 없이 일사천리로 여기까지 왔다.

 지난 9월 정부가 "담뱃값을 최소 2,000원 올려야 한다"고 말한 이후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기습적으로 담뱃값 인상안을 발표하고 야당 반대를 묵살한 채 예산부수법안이란 이름을 달고 올라오게 되었다.

 이번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은 건강증진 목적이 아니라 금연대책으로 포장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서민증세 수단에 불과하다. 법인세인상을 요구하는 야당에게 법인세의 'ㅂ'자도 꺼내지 말라는 정부와 여당은 500조가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놓는 재벌대기업들에 겨우 0.02%인 5,000억 그것도 기존에 깎아준 세금을 다시 걷는 수준에 그치는 대신 담뱃세를 2,000원이나 올려 몇조 원의 세수를 늘려 재벌을 위한 부자본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결국 '부자증세는 없고 서민증세만 있는 복지'가 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하다면 누구한테서 얼마나 걷어야 하는 건지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 부자 감세 철회는 하지 않고 서민 증세를 강행하면서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이라고 호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이라며 2004년 담뱃값을 올리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이 치러질 때 기권표를 던진 5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담뱃값 인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일의 앞뒤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먼저 부자 감세를 철회해 직접세를 늘린 다음, 소비세 등 간접세 인상이 순서인데도 정부여당은 부자 감세에 대해서는 완강히 거부하다가 결국 서민증세를 내밀었다.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줄기차게 MB 정부 때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감면해 준 법인세, 소득세만 제 위치로 돌려놔도 매년 10조 안팎의 세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확실하고 빠르며 조세 정의에 맞는 방법 대신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나라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부의 담뱃세 인상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정부는 야당의 보육지원료 10% 인상을 거부하고 겨우 3%인상에 그쳤으며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증액도 거부하고 저소득층의 성공적인 자활을 도와온 희망리본사업은 없애버리고 374명의 경험 있는 인력을 실업자로 만들어버렸다.

 부자감세기조는 유지하고 서민증세 관철로 복지예산 증액은 거부한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번 예산전쟁에서 승리했다.

 비록 국회 선진화법과 예산부수법안에 묶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조세정의실현과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부자 감세철회와 서민증세 반대를 내걸고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김성주<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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