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김효정
  • 승인 2014.12.01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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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31.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무척 쉬운 단어들로 조합된 제목임에도 입에 잘 붙지 않는 가물가물한 제목. 일본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인 이 작품은 사랑 그 이후에 찾아오는 성장과 성숙에 대한 이야기다.

 하반신 장애를 갖고 있는 여자 ‘조제’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장애 때문에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장애 때문에 방에 갇혀 있어야 했던 조제는 어느 날 내리막길에서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밀어버린 자신의 휠체어를 온 몸으로 막아내며 구해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를 만나면서 행복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라는 구조로 이해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여느 남녀 간의 사랑과 다를 바 없는, 인간 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냉소적이지만 두려움이 많던 여자 조제에게 츠네오는 세상을 향한 문이었고 두 다리였다. 장애를 가진 조제는 물리적으로는 약한 존재이며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조제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 하고 강해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 있는 츠네오. 두 사람은 마음 가는데로 행동하고 느끼고 사랑한다.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이나 포부는 없다. 단지 지금 흐르는 그 시간 안에서 충실한 것,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함께 있다는 것뿐이다.

 조제의 진짜 이름은 야마무라 구미코.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을 좋아한 구미코는 사강의 작품 속 여주인공 이름인 ‘조제’로 불리길 원하고 츠네오는 그녀를 ‘조제’라 부른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현실의 ‘구미코’가 아닌 ‘조제’라는 또 다른 이름을 통해 보다 자유로운 ‘나’를 꿈꾸는 조제.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보고 싶었던 ‘호랑이’가 현실의 사랑을 확인하는 하나의 도구라면, 고요한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보다 관념적 이미지로써의 조제를 대신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현재를 살아간다. 츠네오가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지금 내 옆에 츠네오가 있는 한 조제는 그저 행복할 뿐이다. 조제에게 ‘죽음’이란 미래의 이별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비극은 아니라는 것을, 행복과 죽음을 같은 말로 여기는 조제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조제의 입장은 영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원작에서 조금 더 확장되어 이야기를 펼쳐간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는 원작의 결말 그 이후까지를 그려내면서 보다 구체화시켜 가지만 원작과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짜임새 있는 서사를 만들어 간다.

 조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강의 작품 속 한 구절을 낭독한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그것은 사랑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조제는 자신을 세상과 이어준 츠네오 역시 영원히 자신의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츠네오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조제는 이제 깊은 해저에서 현실과 단절된 채 헤엄치며 살던 물고기 같은 존재가 아니다. 츠네오가 있을 때는 절대 사지 못하게 했던 새로운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는 조제. 사랑이 떠나간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그녀가 얻은 것은 그것을 헤쳐나갈 용기와 희망이었다. 츠네오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통해 조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는 법을 배웠고 성숙해졌다. 사랑은 잔인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김효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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