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감정을 만나다
자신의 감정을 만나다
  • 박민철
  • 승인 2014.11.30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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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은 늘 함께 우리 삶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 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지금 감정이나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질문하면 “잘 모르겠는데요. 늘 똑같아요. 그저 그래요.”라는 등으로 대답하곤 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정도와 강도는 각각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은 매일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며 감정을 경험한다. 아침에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데 차가 지독히 막혀 짜증이 나기도 하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 긴장되기도 하고, 평소에 친했던 친구가 오랫동안 멀리 떠난다고 한다면 허전함과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감정과 이성을 구분하여 생각해왔으며, 이성은 긍정적이며 감정은 부정적인 것처럼 인식하였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리스 철학자 대부분은 정서를 이성적인 심리적 과정을 방해하는 비합리적이고 본능적인 현상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 합리주의 이후 더 철저해져서 사람들은 감정을 억누르면서 감정이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저해하거나 파괴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이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통제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고, 감정을 보이는 것이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감정은 옳거나 그르지도 않고 비합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감정은 이성보다도 생물학적으로 더 오래되었고 적응적이며 빠른 행위 체계이며 사람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고 적응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또한, 감정은 정신건강에도 매우 중요한데,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거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사소한 일로 감상적이거나 쉽게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의 지나친 표출을 억제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또한,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적으로 표출하여 주변 사람들이 위험을 느끼거나 대화하기도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불안한 감정이 증폭되어 안절부절못하며 밀려오는 공포로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치게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삶이 재미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반대로, 오랫동안 키우던 애완동물이 죽어도 슬픔을 느끼지 못하며, 선물을 받아도 그다지 기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기쁨과 슬픔은 물론 분노, 미련, 기대, 흥분 등등의 단어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서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의 감정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처럼 감정은 스스로에게는 물론,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나아가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감정을 행동으로 나타내기 전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에 감정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주위 상황에 관계없이 무작정 표출하거나,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꾹꾹 억누르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부해진다. 다양한 감정의 경험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일상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감정에 당황하지 않고 이해하며 다룰 수 있으며, 누적된 이러한 경험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이 감정 또한 자신에게 속하며 감정의 주인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현재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내가 겪는 다양한 감정 중의 하나이며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줄 경험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박민철<전라북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원광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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