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난제 해결의 ‘숙의(熟議)적 공론화’
사회적 난제 해결의 ‘숙의(熟議)적 공론화’
  • 백승기
  • 승인 2014.11.3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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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권 계층의 왜곡된 행복의 가치는 담론화 과정에서 ‘논의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하였다. 1990년대 이후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안면도 및 굴업도, 부안에 설치하려 했던 방폐장은 국론의 분열과 소모적 갈등의 시작이었으며, 뉴타운 및 재개발, 재건축은 숙의적 공론화 과정을 하지 못한 대표적인 주거정책이었다. 서양의 도시건축가들은 대한민국을 ‘아파트공화국’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필자 또한 사회적 공동체의 양형적인 현상의 치우침에는 일정부분 동의한다. 정책은 담론화를 목표로 숙의적 공론화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이 상책이라 볼 수 있는데, 현대 사회는 숙의(熟議)하는 과정에서는 정치(政治)를 하고, 정치를 해야 할 때는 숙의를 하곤 한다.

해방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는 개발도상국의 전형이 되었고, 자본 민주화는 민주주의에 어렵지 않게 편승하게 된다. 자본 민주화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보스 중심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주주는 오너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단순한 주변인이 되고 말았다. 뉴타운으로 도배된 도심 주거정책의 출구전략을 살펴보면 ‘민주주의와 다수결’이란 미명하에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행복 추구권 및 거주의 안정권이 짓밟히고 만다. 원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개발 이익은 일부 계층을 위한 부의 편중에 일조하였으며, 재정착률이 20% 미만인 거주의 불안정은 지역 커뮤니티를 무너트리는 주범으로 작동하였다.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부실한 정책이 난무한 사회구조는 이해 당사들의 갈등과 불만이 팽배할뿐더러 국가행정은 각종 시위로 인하여 행정의 제 기능이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거의 혁명’이라 불리었던 아파트는 이제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편리성과 사생활의 독립성, 경제적 가치상승의 요인은 여전히 투자 선호도가 높은 상품으로써 존재한다. 임대와 비 임대, 계층 간의 물리적 갈등, 여배우의 용기로서 밝혀진 난방비 부조리는 특권계층을 위한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적 약자층에게 있어서 전면 철거형 재개발의 모순은 폭풍우 같은 공포의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관상’에서 ‘나는 파도만 보았을 뿐, 정작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했다.’라는 대사가 있다.

 아파트가 파도라면 개발의 이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은 바람과도 같은 존재임에 부정할 수 없겠다. 재정착률이 20% 미만인 뉴타운 정책은 항로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마땅한 출구 전략이 없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주민들의 재개발 해제요구에 속수무책일 뿐더러 졸속한 정책이 양산한 사회적 갈등 비용은 감당하기에 역부족인듯하다.

 중앙정부의 정책목표와 지방정부의 실행 관리의 양자 괴리는 지방자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난제다. 무모한 재개발은 원주민의 재정착을 어렵게 하였고, 계층의 불화는 공생. 공존을 힘들게 하였다. 다양한 계층과 여러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커뮤니티’를 조성함으로써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책임행정의 수립이 필요하다.

 난제 해결을 위한 ‘숙의적 공론화’의 과정을 살펴본다.

 첫째는 ‘사회적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이는 참여자들의 대면 및 지속적인 만남을 통한 대화이며, 쌍방향의 의사소통과 상호이해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학습 효과’로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시민과 전문가간의 다양한 관점의 전문 지식 및 실체적 경험의 공유가 필요하겠다. 정보의 공유와 논의는 신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방법이 된다.

 세 번째는 ‘타인 가치의 존중’이다. 비판적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의견 및 입장을 갖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며, 협의되고 논의된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최우선 제안을 버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네 번째는 ‘상생의 대안 도출’이다. 숙의적 공론화의 참여자는 성공적인 대안의 마련을 위해 노력하여야 하고, 실행 가능한 최선의 결론에 도달해서는 동의안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신뢰의 구축은 조합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 정부에 최적의 권고안을 제출함으로써 사회 통합적 합의에 이르게 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정부의 책임지원 행정 확립’이 필요하다. 원주민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추가 분담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겠다. 아울러 실버계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동작업장의 활성화 및 집단 상가의 공동 분양권의 취득 및 관리, 위탁 운영을 통한 수익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의 정책수립은 복지 선진국의 재개발 공론화 시스템을 신중하게 검토 및 도입함으로써 재개발의 참여 여부를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유도형’ 행정이 요구된다.

 출구는 새로운 입구로서의 존재를 규정하게 된다. 이해당사간의 상호 대화, 전문가 및 시민의 참여, 합리적 절차와 타인가치의 의사 존중, 도시 환경보존을 통한 신뢰 구축의 의미 부여는 ‘숙의적 의사결정(Deliberative decision-making)’의 세부적 정책목표가 된다.

 백승기<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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