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와이즈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로렌 와이즈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김효정
  • 승인 2014.11.24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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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30.

 “패션계는 냉정합니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 받습니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진행자 이소라의 오프닝 멘트이다. 매번 같은 멘트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이 한마디로 패션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규정 짓는다. 그렇다면 대체 진보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새롭고 창의적이고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무척 어렵다). 어디든 치열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진부했다가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패션계 역시 냉정한 승부의 세계임은 틀림없다.

 패션계의 속사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이러한 승부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민 패션 무식자 앤드리아의 고군분투 성장기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지방 출신의 앤드리아는 여자들이 선망하는 일자리, 바로 세계 최고의 패션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의 개인 어시스턴트로 운 좋게(?) 들어간다.

 그러나 화려하고 멋진 겉모습과 달리 앤드리아의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앤드리아의 상사인 미란다는 흡사 악마처럼 일의 구덩이로 앤드리아를 몰아친다. 앤드리아의 휴대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대고 미란다는 별의별 업무를 지시하면서 앤드리아를 정신없게 만든다. 미란다의 추천서를 얻어 원하는 잡지사에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그녀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견뎌내는 앤드리아. 그러나 앤드리아가 미란다에게 시간을 저당 잡혀 있는 동안 오래된 친구인 릴리, 남자친구 알렉스와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젠장! 앤드리아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앤드리아는 생각한다. 과연 여기서 살아남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백 만 명쯤 되는 여자들이 하고 싶어 한다는 이 일이 과연 내 영혼을 바칠만한 것인가.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다. 작품 속 편집장 미란다는 현재 패션계의 막강 권력자로 통하는 미국 <보그>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그 모델이다. 그녀의 어시스턴트였던 로렌 와이스버거가 자신의 체험에 상상력을 버무려 쓴 소설로 출간당시 굉장한 화제를 모으며 그 여세를 몰아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파리와 밀라노, 런던, 뉴욕 등 세계 4대 컬렉션의 스케줄이 그녀 때문에 바뀌기도 하고, 반드시 그녀가 도착해야 패션소가 시작되며 표정하나 코멘트 한마디로 디자이너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핵폭탄 윈터’. 영화에서는 메릴 스트립이 윈터를 모델로 한 미란다를 맡아 세계 패션계의 막강한 권력자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앤 헤서웨이가 점점 진화하는, 그리고 결국 자아를 찾아 성장하는 앤드리아를 맡아 열연했다.

 특히 전 세계 패션 피플의 숭배와 찬양을 받는 안나 윈투어의 실제 모습과 작품 속 등장인물인 미란다를 비교해보는 것도 책이나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패션계에 전설처럼 떠돌던 안나 윈투어의 ‘유별난 에피소드’들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단지 ‘패션에 열광하는 여성들이 이야기’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앤드리아는 수많은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과 무척 닮아있다. 힘겨운 출퇴근 전쟁, 야근으로 지친 심신, 직장상사의 비합리적인 업무지시를 처리해야 해야 하는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앤드리아, 직장 생활에 요령이 생긴 선임 어시스턴트 에밀리, 이미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미란다까지 이들은 사회에서 우리가 거치게 되는 여러 단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대변함으로써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앤드리아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바로 서 있는 것인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에너지 또한 내재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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