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선비 글 읽는 소리, 수려한 산세 순창 훈몽재
조선선비 글 읽는 소리, 수려한 산세 순창 훈몽재
  • 우기홍 기자
  • 승인 2014.11.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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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몽재

 가을이 어느새 왔나 싶더니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아침이나 저녁때는 제법 추운 것이 겨울 문턱이 눈앞이다. 순창에는 13일 아침 눈발까지 날렸다. 따라서 이번 주말이 아니면 단풍구경이며 가을 정취를 느끼며 걷는 여행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시기면 각박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산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또 옆에 같이 걸어줄 친구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다. 친구가 필요치 않다면 조선선비의 기개 있는 글 읽는 소리와 수려한 산세에 마지막 남은 단풍이 친구가 되어줄 순창 훈몽재 일원으로 여정을 권해보고 싶다.

 

▲ 하서 김인후 선생 초상화

 ◇조선 유학의 큰 별 하서 김인후 선생을 만나다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는 훈몽재가 있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선생이 명종 3년인 1548년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하서 선생은 주자의 이기이원론은 계승하는 견해로 성경의 실천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이를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송강 정철과 월계 조희문 등 당대 유명 학자들을 배출했으며 순창이 호남 유학의 산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훈몽제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하서 선생의 5대손인 자연당 김시서(1652∼1707)에 의해 1680년께 자연당이란 이름으로 복원됐다가 퇴락했다. 이후 후손과 유림에 의해 점암촌에 복원됐다가 고종 5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됐다. 하지만,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되살리고, 후세에 전승 발전시키며 나아가 역사적 가치 재조명 및 예절이나 유학 등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순창군이 현재의 위치에 2009년 증건했다.

 

▲ 훈몽재 강회 모습

 이곳은 훈몽재(강학당)와 자연당(숙박시설), 양정관(교육관 및 숙박시설), 삼연정(누정), 대학암, 훈몽재 고인돌, 식당으로 구성됐다. 현재 훈몽재에서는 한문학과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거주하면서 논어나 맹자 등 유학경전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유학 전문교육반이 운영되고 있다. 또 초·중·고·대학생·일반인을 대상으로 1주∼4주 동안 예절이나 인성교육을 하는 방학 예절교육반도 있다. 하루나 이틀 동안 짧은 기간에 예절이나 심신단련을 하는 단기체험학습반도 운영된다. 여성교육반도 있다.

 

▲ 훈몽재 삼연정

 특히 방학 때는 고려대와 단국대, 전주대, 원광대, 상지대 등에서 100여명의 학생이 유학교육반에 참여한다. 유학교육반 마지막 단계에서는 전국 유학의 대가를 초청해 김인후 선생의 가르침과 도의, 절의, 문장의 3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강회도 열고 있다.

 

▲ 영광정

 ◇자연을 벗 삼아 나이 든 정자 영광정

 훈몽재에서 글 동냥을 끝냈으면 바람을 벗 삼아 영광정으로 가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영광정은 이 지방 출신인 독립운동가 김원중이 동지들과 뜻을 모아 1910년 건립했다. 경술국치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고자 건립한 것. 영광정 처마 끝에는 태극팔괘를 새겨 조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이들의 굳센 의지를 담았다. 한국전쟁 때 현판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됐으나 1974년 다시 지었다.

 

▲ 전봉준 피체지

 ◇전봉준 피체지

 전봉준 피체지는 동학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된 곳이다. 전봉준은 고종 3년(1895) 일본의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자 다시 농민군을 규합, 서울로 진격했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대패한 후 부대는 해산됐다. 이후 전봉준은 재기를 도모하고자 전라도를 순회하던 중 이곳 피노리에 들러 옛 부하 김경천과 접촉하다 밀고 되어 체포됐다.

 

▲ 낙덕정

 ◇낙덕정

 이곳은 광무 4년(1900)에 김노수(金老洙)가 조선 초기의 인물인 하서 선생의 발자취를 기념하고자 세웠다. 김인후가 자주 찾았다는 메기바위, 즉 낙덕암의 이름을 따 낙덕정이라 했다. 낙덕이란 덕망이 높아 후학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평소에 자연을 늘 가까이했던 김인후의 인품을 상징한 것이다.

 

▲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가인 선생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북풍회 사건을 비롯한 각종 노동쟁의와 광복단 김상옥 사건, 6ㆍ10 만세사건 등을 변론해 우리 민족의 인권을 지키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의 감찰위원장을 비롯해 미 군정청의 사법부장을 지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가인 선생은 대법원장 시절 우리나라 사법질서의 초석과 사법부 독립성을 다지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 대법원 가인연수관

 ◇대법원 가인연수원 

 가인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사법부 구성원의 교육과 수양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2010년 선생의 생가가 위치한 순창군 복흥면에 건립했다. 대지 8만303㎡에 건축면적 5천203㎡로 지하 1층, 지상 4층이다. 지하 1층에는 대강의실과 세미나실, 가인 전시실이 있다. 이곳에는 가인 선생을 기념하는 유품과 판결문, 영상물, 사법역사를 담은 각종 자료와 흉상이 전시돼 연수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상시 개방 및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순창=우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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