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마’
드라마 ‘마마’
  • 원도연
  • 승인 2014.11.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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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10여년간 여성학을 강의하면서 배우고 가르쳤던 한 가지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우리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법적 지위가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여전히 여성이 우리 사회의 주체라는 느낌은 별로 없다. 여전히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남자들의 게임이다.

 지난달에 끝난 MBC 드라마 <마마>는 그런 점에서 보기 드문 기획이었다. 드라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싱글맘 여주인공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옛 남자의 아내와 역설적인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스토리는 일견 진부해 보이지만 두 명의 여자가 주인공이 되고 주연급 남자 배우가 스토리 중심에서 밀려나는 성별구도는 주말 드라마에서 절대로 흔치 않은 구성이었다.

 주인공 한승희는 싱글맘으로 살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계적인 화가가 되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 그루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아빠)에게 맡기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만약 여기서 한승희가 자신의 옛 남자이자 아이의 아빠인 문태주에게 불쑥 찾아가 아이의 아빠임을 밝히고 책임을 지라고 했다면 드라마는 전형적인 신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한승희가 택한 파트너는 아이의 아빠가 아니라 옛 남자의 아내인 서지은이었다.

 드라마의 핵심은 이 두 여자의 우정과 갈등, 배려와 헌신으로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드라마는 아이의 아빠인 문태주나 손자를 갈구하는 할머니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드라마 <마마>가 남긴 최대의 미덕이었다. 두 여자의 우정과 도전이라는 점에서 옛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한 여성의 과감하고 주체적인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생각나기도 했다. 모든 것은 한승희가 선택하고 결정했으며, 서지은 역시 문태주의 아내가 아니라 한승희의 친구로 남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다. 한승희 뿐만 아니라 서지은의 변화도 놀라운 것이었다. 아이의 아빠였던 문태주는 끝까지 결정권을 갖지 못했고 종속변수로 남았다.

 <마마>는 주말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니고 여자들의 우정과 의리를 담아낸 예외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은 이쁘고 착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결정하는 사회적 주체로 나타난다.

 지난주 인터넷을 시끌시끌하게 했던 칼럼니스트 곽정은의 성희롱 발언도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만들어냈다. 한 방송사의 심야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곽정은이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가수 장기하는 침대 위에서 어떨까 상상한다”고 말하면서 논쟁은 뜨겁게 타올랐다. 물론 당사자인 장기하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발언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현상적 쟁점은 이 발언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성희롱이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당사자가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았으므로 전형적인 성희롱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견과 만약 이 발언을 남성이 했다면 여성들이 가만 놔두었겠느냐는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나로서는 곽정은의 발언이 한번 낄낄거리며 넘어갈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남자들은 그냥 넘기기를 싫어했다. 아마도 그동안 무수히 많은 남자들이 비슷한 사건에 당하고 무너진 것에 대해 이 사건으로 보상받고 싶은 잠재적인 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사회는 확실히 변해가고 있다. 깊고 깊은 경제불황이 계속되면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여성들이 그냥 집에 있기를 바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여성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소수자로서의 메리트가 아니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한 걸음씩 더 내딛고 있다. <마마>에서 한승희는 문태주에게 말한다. “문태주 넌 잊었을지 모르지만 난 기억해. 니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었는지. 인생 후지게 살지마!”

 원도연<원광대교수·문화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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