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의 역설
피노키오의 역설
  • 임규정
  • 승인 2014.11.1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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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역설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피노키오가 어느 날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해 보라. 그 때 피노키오의 코는 길어지고 있는가? 이 짧은 이야기가 역설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는 바로 그 경우에만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이 아닌가? 만약 피노키오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면 그의 코가 길어질 것이나,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곧 그의 코가 지금 길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피노키오가 참말을 했다면 그의 코는 길어지지 않을 것이나,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다”는 그의 말이 참말이라는 것은 실제로 그의 코가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피노키오의 불쌍한 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셈이다.

이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어려운 역설인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역설의 유명세가 피노키오라는 캐릭터의 유명세에 기대고 있음은 자명하다. 실제로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찾기란 흔치 않다.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매우 기괴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노출해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종종 있을 정도다. 제페토를 모함하여 감옥에 가게 한 피노키오는 충고를 주는 귀뚜라미를 죽인다. 또 길에서 만난 여우와 고양이는 돈을 빼앗기 위해 높다란 나무에 피노키오를 목매달고, 죽기 직전의 피노키오를 요정이 구출한다. 그 이후에도 피노키오는 이런 저런 꼬임에 넘어가 개목걸이를 걸고 농장을 지키는 개 대용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장난감 나라에 놀러갔다가 당나귀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건과 고난을 겪고 난 피노키오는 병든 제페토를 잘 부양하며 착하게 살게 되고, 결국 인간 소년이 된다.

이 흥미로운 동화는 성장 이야기이다. 피노키오는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욕망을 참지 못하고, 순간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며, 멀리 보지 못하지만 잘 뉘우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피노키오에게는 의지를 가지고 순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래서 한겨울 아빠가 하나뿐인 외투를 팔아 사준 책을 되팔아서라도 연극을 보려고 하고, 내일까지만 버티면 인간이 될 수 있는데도 오늘 밤 장난감 나라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탄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야 비로소 피노키오는 순간의 유혹들에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마치 권위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것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해당 분야에 지식이 풍부하고 인격이 훌륭하여 존경을 받는 권위가 있는 사람과, 지위나 나이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사람은 전혀 다르다. 권위적인 사람은 오히려 고집이 센 어린아이에 가깝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순간의 감정이나 유혹에 휩쓸리지 않을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황을 고려할 줄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타인의 배려에 감사하고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 사회에 어른이 부족하다.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든 아이가 되었다. 특히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판단과 감정에 흔들려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 상황에 몰두해 있는 사람에게는 밖에서의 충고가 들리지 않는다. 마치 피노키오와 같다. 밖에서 보면 뻔히 보이는 고난의 구렁텅이로 피노키오는 끝끝내 걸어간다. 우리가 아무리 안 된다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다. 그것은 피노키오가 아이라서 그렇다. 피노키오의 눈에는 우리가 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피노키오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어려움들을 생각해 보라. 더 늦기 전에 우리사회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순간의 감정과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의지하는 대로 우리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임규정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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