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의 웹툰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윤태호의 웹툰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 김효정
  • 승인 2014.11.10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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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28.

 연예인들의 직장 체험담을 담은 모 방송국의 ‘오늘부터 출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회사에 나눠 입사한 연예인들의 자충우돌 직장체험이 그려지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저렇게 일하다가는 잘리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그중 한 연예인은 이렇게 말했다. ‘직장인들이 슬퍼 보인다’고. 언제부턴가 직장은 삶의 터전이 아닌 전쟁터가 되어버렸고 그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아닌 슬픔이 서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이처럼 슬픈 자화상으로 얼룩진 직장인들의 삶과 일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는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만큼 단단한 서사적 구조와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희노애락이 생생하게 그려지니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인생 교과서라는 수식어가 과장은 아닌듯 하다.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바둑기사만을 목표로 살았던 청년 ‘장그래’는 입단에 실패하고 후견인의 도움으로 종합상사인 ‘원 인터내셔널’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신입사원들 틈에서 장그래의 바둑 이력은 아무 필요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낙하산 장그래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무시와 경멸이다.

 그러나 장그래는 자신을 요란하게 치장하지도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바둑판에서 터득한 세상의 이치와 특유의 신중함, 통찰력으로 느리지만 차근차근 ‘상사맨’으로 거듭난다. 그 길에 동행 하는 영업3팀의 오과장과 김대리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직장은 ‘혼자 하는 곳’이 아닌 ‘함께 하는 곳’임을 깨닫는다.

 책 속에는 장그래의 고군분투기 외에 진짜 바둑이야기도 나온다. 조훈현 9단이 한국 바둑 역사상 최초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이 바로 <미생>의 또 다른 배경. 책에서는 이 대회를 각 수마다 해설을 붙여 <미생>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을 제공한다. 1980년대 후반 세계 바둑계의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의 조훈현은 유일하게 이 대회에 초대된 한국인이었다.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도 않았던 그였지만 조훈현이라는 잠룡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판세는 역전되었다. 이 모습은 만화 속 장그래와도 오버랩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미완의 강자 조훈현이 중국의 ‘기성(棋聖)’ 녜웨이핑을 물리친 것처럼, 검정고시 출신에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요란한 스펙도 없으며 든든한 백그라운드 하나 없는 초라한 우리의 인턴사원 장그래 역시 통쾌한 승리의 순간이 찾아와 줄까.

 원래 이 작품은 드라마화 되기 전 지난해 모바일 단편 옴니버스 영화로 제작 되었다. 주인공 장그래를 비롯해 각 주요 인물 6명의 프리퀄(원작 작품 내용에 앞선 사건을 담은 속편)이 모바일 앱으로 공개되었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당시 주인공 장그래 역의 임시완과 김대리 역의 김동식이 드라마에 다시 캐스팅 되었고 나머지 인물들은 이번에 새롭게 캐스팅 되었는데 모두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입체감 있고 강렬한 캐릭터를 구축해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와 원작을 비교해 보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 장그래의 로맨스를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원작자의 드라마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들의 ‘로맨스 불가’였다고 하니 말이다.

 작품 제목 ‘미생’은 짐작할 수 있듯 바둑용어이다. 바둑에서는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完生)’이라 말하는데 두 집을 만들기 전은 모두 ‘미생(未生)’ 즉,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 상대로부터 공격 받을 여지가 있는 말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서 두 집을 짓기란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도달할 ‘완생’을 위해 우리는 자신만의 전략으로, 성실함으로 상대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한수, 한수를 묵묵히 놓을 뿐이다. 그 과정에는 인턴사원의 정규직 전환이나 로또 당첨 같은 ‘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로 인해 내가 살아 있음을, 존재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엔 모든 것을 다 이룬 완생인 사람은 없을뿐더러 있다고 한들 그 삶이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생이고, 미생이기 때문에 어제를 살아냈고 오늘을 살고 있으며, 내일을 살아낼 것이다. 그러니 미생이어도 괜찮다. 세상의 모든 미생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만들고 지탱해 가는 든든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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