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 김효정
  • 승인 2014.11.0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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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27.

 죽음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이 나와는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산다. 결국 우리의 삶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물며 그 죽음에 나이는 정말 무용지물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죽는다는 것은 두렵고 슬프기 마련이다. 이토록 만인 앞에 평등한 죽음이라니.

 16세 소녀 헤이즐의 주위에도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말 그대로 따라다니고만 있을 뿐 아직 헤이즐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못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이자 산소탱크를 액세서리처럼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소녀. 그러나 세상을 향해 가벼운 농담과 진솔한 이야기를 건넬 줄 아는 이 소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친구 어거스터스도 있다.

 암 환우 모임에서 만난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고 항상 피우지 않는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닌다. 이 담배에는 절대 불을 붙이지 않는다. “불을 붙이지 않으면 담배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고 죽음의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죽음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이처럼 주체적이면서도 당당하다.

 그리고 불치병을 선고받은 두 십대 청소년은 한없이 죽음에 가깝지만 그 죽음에 몰두하지 않고 보편적이지만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풀어간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줄까? 우린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병을 비관하는 대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그리고 남겨질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는 두 사람의 이러한 고민의 교차지점에서 만나는 사람이 바로 유명 작가 반 호텐.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그를 만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반 호텐은 괴팍하고 고약한 노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병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는 딸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스스로를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 고통 속에 살아가는 반 호텐의 모습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남겨진 사람의 고통을 전면에 드러내고 이는 곧 헤이즐과 가족,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관계를 대비시킨다.

 우리 나라에서 ‘안녕 헤이즐’이란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는 베스트셀러 원작답게 삶을 관통하는 주옥같은 명대사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죽음을 담담하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모습은 경쾌하면서도 심각하지 않고, 삶과 죽음에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십대 청소년들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너를 만나 내 짧은 생은 영원이 됐어”라고 고백할 줄 아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진짜 사랑을 몰라 해매고 있는 어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랑’에 대한 멋진 정의마저 내려준다.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 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어거스터스의 이 마지막 말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강렬한 통증을 유발시킨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 안에서 자신만은 절대 상처 받길 원하지 않는다. 그 사랑은 과연 진짜인가. 사랑에 대한 보편적 정의에 비춰본다면 그 사랑이 남긴 상처까지도 보듬을 줄 아는 그들의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렬하고 ‘진짜’같다. 꼬맹이들이 제법이다.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순간도 그렇다. 단지 ‘그 순간’이 되었을 뿐. 그리고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지금’을 소중하게 살아내면 될 것이다. ‘나를 기억해 줄 나만의 흔적’이란 그 시간 안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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