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
측은지심
  • 황선철
  • 승인 2014.10.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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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젊은 지인이 있다. 늦게 결혼해서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있다. 부부가 열심히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원룸에서 살고 있다. 대장 내시경 검진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통증은 고사하고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고 한다. 다행히 민간보험을 들어서 보험사에서 최소한 암 진단비, 수술비, 입원비 상당액은 지급한다고 한다. 앞으로 몇 번의 수술이 더 있을지, 향후 항암치료비, 생활비 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국가의 건강보험제도가 있지만, 그 한계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재닛 엘런이 “미국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크레디트스위스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에는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55.2%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62.8%까지 늘어났다. 또한, 국정감사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배당소득은 상위 1%가 72.14%, 10%가 93.48%를, 이자소득은 각각 44.75%, 90.65%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의 소유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부(여기서 부는 재산, 자산, 자본이라고 도 표현하며, 부는 부동산, 동산, 주식, 예금, 채권 등을 포함한다. 부를 소유하면 임대료, 배당금, 이자 등을 받는다)의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에 의하면, 경제성장률이 점점 낮아지면서 임금보다 자본소득이 더 빨리 늘어나는 탓에 부의 집중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돈이 돈을 벌어 부자들을 더 큰 부자로 만드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의 대가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모 잘 만난 사람보다 나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부는 세습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달 담뱃값 인상에 이어 지방세인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을 2배 정도 올릴 방침이라고 한다. 부족한 세수와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지만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는 게 문제이다.

 경제 정의 관념에서는 담뱃세, 자동차세 등과 같이 소득이나 자산의 규모에 관계없이 부과할 할 것이 아니라 법인세나 소득세, 재산세 등에 대해 증세를 하여 조세형평성과 부의 재분배 효과를 가져와야 한다. 증세가 필요하면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정부는 노인기초연금,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사용해야 할 돈은 많은데, 세금은 걷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세 저항이 적은 부분을 택하고 있다.

 올해 경기 부진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8조5,000억 원 이상의 세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내년 재정지출은 5.7% 확장해서 운용하기로 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이후에는 30조원이 넘는 적자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시중에 돈을 풀어 부동산과 주가를 띄워 가계소득을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이다. 그 효과는 미비하고 빈부의 양극화 심화와 가계부채 악화라는 부작용만 심화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인은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다. 금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늦은 밤과 휴일에 사무실에 나가서 자격증 취득을 위해 별도의 공부를 하고 있다.

 앞으로 수술이 끝나면 몸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요구사항을 전적으로 들어줄 리도 없고, 들어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다운 삶의 기초가 되는 건강권과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비, 교육비 등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폭넓은 복지정책은 세금을 많이 걷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가도 국민에게 군림할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져야 한다. 세수증대는 누군가의 희생과 의무가 따른다. 공생과 통합은 가진 자가 먼저 양보해야 가능한 일이다. 부자증세는 지인의 힘겨운 암 투병보다 쉬운 일 것이다. 부디 빠른 쾌유를 빈다.

 황선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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