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 출연기관장 인사검증 조례안 공방
전북도 출연기관장 인사검증 조례안 공방
  • 박기홍 기자
  • 승인 2014.10.26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화와 화합의 기치를 내건 민선 6기 전북도와 10대 전북도의회가 출범 5개월도 되지 않아 갈등의 바다에 빠졌다. 전북도 산하 출연기관장 인사검증 조례안을 둘러싼 조용한 긴장이 안전행정부의 유권해석을 계기로 시끄러운 다툼으로 확전될 우려를 낳고 있다. 주변에서는 “서로 갈 길이 먼데 자칫 소모전으로 에너지를 낭비할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 안행부 유권해석이 단초: 전북도의회가 광역단체 산하 출연기관장에 대한 인사검증을 조례안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올해가 두 번째다. 첫 시도는 11년 전인 2003년의 일이었다. 당시 도의회는 ‘전북도 공기업 사장 등의 임명에 관한 인사청문회 조례안’을 재의결했지만, 대법원에서 무효확인 판결을 받아 좌절의 쓴맛을 봤다. 당시 대법원은 “공기업 사장 등의 임명·위촉권은 지자체장에게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며 “하위법규인 조례로 제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10여 년간 묻혀 있는 ‘뜨거운 감자’가 10대 광역의회 출범과 함께 다시 불거진 배경엔 그간의 출연기관장 인사권이 적잖은 논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민선 4, 5기 때 도 산하 출연기관장의 상당수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하차했으며,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옷을 벗는 사례도 나왔다. 이러자 광역의회마다 여러 대안을 마련해 단체장 인사권 견제에 나섰다. 제주도는 특별법에 따라 일부 인사청문회를 하고 있고, 서울은 기본조례에 근거해서, 인천은 자체 운영지침에 따라 일부 내정자에 한해 검증할 뿐이다. 전북도의회 역시 ‘인사청문’을 ‘인사검증’으로 바꿔 법률적 위반의 범위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전북도는 도의회의 조례안에 대해 안행부의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안행부는 “전북의 조례안은 단체장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지방공기업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안행부 선거의회과는 “관련법에 근거한 정관에 따라 이사회에서 선출된 기관장에 대해, 도의회가 다시 인사검증하는 것은 지방자치법 근거 규정이 없어 지방의회의 권한 내 행위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싸움: 두 번째 칼을 빼든 도의회 입장에선 안행부 유권해석이 나왔지만,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의회는 오히려 “조례안으로 법제화하려는 것은 전북도의회가 전국 첫 시도인 만큼 안행부의 문제 제기가 있을 줄 알았다”며 “10여 년 전의 문제를 보완해 다시 내놓은 만큼 대법원으로 간다 해도 이번엔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행부는 이번 전북도의회 조례안 싸움에서 밀릴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할 우려가 있어 사력을 다해야 할 형편이고, 도의회는 본회의까지 통과시킨 조례안을 다시 폐기한다면 스스로 결정을 번복하는 ‘자기부정’의 모순을 낳을 수 있어 단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이 펼쳐진 셈이다.

 도의회는 이미 법률적 자문을 구했고, 이를 토대로 반박하고 있다. 정연부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종전의 판례를 볼 때 사전적인 인사청문회의 위법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있으나, 사후적인 인사검증까지 금지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이 점을 고려하면, 조례를 통해 사후적인 인사검증제를 도입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고 자문했다. 도의회는 인사권 침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청문’이란 표현을 없애고 ‘검증’이란 표현을 쓰는 우회로를 선택했고, 상위법에 사후검증을 금지해야 한다고 선을 긋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 우위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도의회는 또 행자위 차원에서 ‘도 산하 출연기관 조사특위’를 구성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급해 자칫 갈등 구도가 복잡하게 얽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도의회 특위 구성은 의원의 20%(8명) 이상 서명을 받아 운영위원회 심사를 거치고, 본회의에 상정되면 과반수 참석에 3분의 2 이상만 찬성하면 가능해진다. 이를 두고 “안행부의 유권해석 결과를 집행부가 공개하고 무언의 압박에 나서자 의회가 발끈해 반격의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긴장과 협력의 공존 시대: 전북도와 도의회 주변에서는 양 기관이 서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되 갈 길이 ‘구만리 장천’인 만큼 불필요한 감정싸움은 자제해야 할 것이란 말들이 오간다. 서로 지역발전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창조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적 화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란 주장이다. 인사검증 조례안만 봐도 의회와 집행부가 적당한 선에서 긴장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대안을 모색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북도는 “인사검증의 필요성은 일정부문 이해한다”고 말한 만큼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번 기회에 의회와 터놓고 중도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의회 역시 정치가 위에 있고 행정이 아래라는 ‘정고관저(政高官低)’의 불건전 관행에서 벗어나 격의 없이 집행부와 대화를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법적 공방 이전에 정치적 합의를 통해 제3의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기와 대전 등 다른 광역단체도 의회와의 합의를 통해 비공개 검증을 추진하고 있어,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소모적 갈등을 없애는 방안이 될 것이란 여론이 일고 있다.

 박기홍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