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그 비극
가정폭력과 그 비극
  • 김선남
  • 승인 2014.10.23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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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강남에서 발생한 남편살해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에 관한 뉴스가 언론을 달구고 있다. 사건 당사자가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수백억대 재력가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들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월등했기 때문에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이다. 이 사건에도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같은 그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보도에 의하면, 아내는 30여 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고, 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부부간 살인사건 건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11년의 경우 부부간 살인사건으로 최소한 79명의 남편과 아내가 목숨을 잃었다. 이는 2010년의 69명보다 10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불행의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가정폭력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서 이를 접하는 이들의 입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이번 정부는 출범 당시 가정폭력을 국민안전을 저해하는 4대악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 이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 발생 건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가정폭력 발생 건수를 보면, 2011년 6,848건, 2012년 8,762건, 2013년 1만6,785건이다. 올해도 가정폭력이 1만7,000여건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가정폭력에서 가장 높은 건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내를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 이는 전체의 70.1%(1만1,759건)에 해당한다.

 가정폭력은 보통 일상적으로 그리고 상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가족부(2010)에 따르면, 기혼 남녀 2,659명 가운데 약 53.8%(1550명)이 최근 1년간 가정폭력을 겪었다고 한다. 부부 두 쌍 중 한 쌍이 피해를 본 셈이다. 피해 아내들은 주로 30대-40대(65%)에 집중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빈도도 늘어나고 있다. 가정법률상담소(2013)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노인 10명 가운데 3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하였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황혼이혼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가정폭력이 증가하다 보니 그 강도와 수법이 잔인해지고 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이는 전기고문, 흉기활동 등 보통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심각한 가정폭력을 사회문제가 아니라 사적인 문제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아내들조차도 이를 숨기는데 급급해한다. 실제로 남편의 폭력을 경험한 아내 가운데 단지 8.3%(2010년)만이 경찰에 신고하고 있다. 또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대응 역시 소극적이다. 부부간 폭력사건이 신고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사법처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폭력남편이 실질적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극소수라는 점이 이를 확인해 준다. 경찰청(2009~2012.6월)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건수(2만8857건)가운데 경찰이 가정폭력범죄자를 구속한 경우는 겨우 0.8%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정폭력은 구성원 모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폭력을 당한 아내는 무기력증, 우울증, 대인 공포증 등과 같은 심리적 불안감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이들은 가출하거나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거나 자살을 하는 상황이다. 남편 폭력은 또 다른 사회문제나 범죄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

 또한, 가정폭력은 가정파괴나 가족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피해자로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의 폭력행위는 자녀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을 유발하여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가정폭력이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는 일’로 이해되는 한, 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정폭력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특히, 가정폭력을 감추거나, 알고도 모른척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폭력을 경험하는 아내들은 피해 사실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이를 신고해야 한다. 또한, 국가도 가정폭력을 사적문제로 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가정폭력을 가정 밖에서 발생하는 다른 폭력과 같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런 극적인 인식의 전환이 있을 때에만, 가정은 구성원 모두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선남<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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