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삼천동 세내천 주변, 마을의 기억
전주 삼천동 세내천 주변, 마을의 기억
  • 고길섶
  • 승인 2014.10.22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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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현장, 사람들을 보다 7.

전주기접놀이보존회 전수관에서 전주시 세내천 주변 정동, 비아, 용산, 함띠 마을의 어르신들이 상여소리 시연을 보이고 있다.

 “옛날에 용산마을 상쇠가 있었는데 참 잘혔어.”
 “저희 아버지도 상쇠셨는데...”
 “잉~ 근데 좀 느렸어,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더라고.”
 “함띠에 기양이 양반이 징 잘 쳤는디 참말로.”
 “정동은 누가 있었던가이?”
 “비아에 거시기 그 누구였더라? 장구재비... 근데 성질머리 참 고약혔어.”
 “암먼! 근디 그려도 그때가 참 재밌었는디 말이여이.”

 교육시간에 나왔던 어르신들의 대화내용이다. 주강사 심영배 선생이 기접놀이를 화두로 던지자 옛 기억들이 되살아났던 모양이다. 어떻게 기접놀이를 하게 되었냐니까“그냥 마을에서 하던거니깐”, “할 나이가 됐으니깐”, “아버지나 삼촌, 할아버지가 하셨으니깐”, 뭐 이렇게들 대답하니 싱겁다. “마을의 기억”이라는, 전주기접놀이보존회에서 주관해서 전주시 삼천동 2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마을들은 전주시에 편입하기 전에는 완주군 우전면 계룡리에 해당하던, 기접(旗接)놀이로 유명한 정동, 비아, 용산, 함대(함띠)라는 자연마을들이다.

 이 마을들은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지어 왔으나 복숭아, 감, 배 등 과수농사로 대부분이 바뀌었다. 기접놀이는 원래 ‘합굿’이라 한다. 사람들 입말에는 “학구맨다” “합굿맞춘다” 따위들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합굿이란 게 이웃마을들을 초대하여 여러 마을이 함께 벌이는 대동굿으로 계룡리합굿, 7월 백중합굿으로 불렸다고 한다. 벼농사 세벌 김매기를 끝내고 놀이를 벌였으나 지금은 농사 품목이 바뀌다보니 그나마 백중합굿 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백중 때면 복숭아 수확철과 겹친다. 올해에도 용산마을에서 치러내기는 했으나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오래된 삶은 단절되고 또 그렇게 소멸된다.

 교육 프로그램은 ‘발굴’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 세시풍속(대보름, 백중), 민속소품 제작기능(농기구 등), 우리 역사의 변곡점에서 생활상의 기억(일제, 6.25 등)이 살아서 남아 있는 지역”으로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 모양이다. 그러나 발굴 그 자체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마을의 역사문화 발굴과정을 통해 주민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증언하고 기억하는, 단절된 그 집단적 경험들을 재현하고 새롭게 공감하며 마을 이야기를 써나가겠다는 욕심이다. 함띠마을은 택지개발로 아예 송두리째 곧 사라지게 된다. 전주시라는 도시화되는 공간이 오래된 농촌의 삶의 흔적들을 집어삼키는 포효 앞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 뿐인가보다.

 그러나 그것이라고 어디 쉬울까. 심영배 선생은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경험들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강사진은 동영상 촬영까지 다 준비하고 있지만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마디씩 하다보면 삼천포로 빠지거나 의도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제대로 발굴하려면 개별적으로 접촉해 구술내용을 진득하게 듣고 질문하며 꼼꼼하게 챙기는 게 더 나을성싶다. 그러나 교육이 발굴 자체가 아니고 단절된 경험들의 집단적 공감과 소통을 통해 뭔가 답을 찾아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함께 하는 문화적 의미가 또 있다.

 이 마을들의 기접놀이의 경우 학술연구자들의 논문이 몇 편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시각이 아닌 주민 자신들의 시각에 의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표현하고 쓰자는 것이 이 교육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오고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 촌로들의 직접적 표현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가 겨우 들리는 곳, 세내천 천변에 위치한 전주기접놀이보존회 전수관. 그곳의 목요일 저녁은 농촌의 전통적 삶의 흔적조차 싸그리 지워버리는 도시공간에 반란이라도 일으킬 기세다. 몇몇의 젊은 사람들과 마을 어르신들 예닐곱, 용산마을에 사는 임성철(76) 어르신과 함께 상여소리 시연을 하다 말고 누군가 “아파트 사람들이 밤중에 미쳤다고 허겄네!” 하니 모두 웃으며 막걸리 한잔씩 걸친다. 그러거니 말거니 어르신의 상여소리 또 나온다. “어---노--, 어---노--, 어아리 넘자 어---노--...” 그러다 말고 의미있는 한 말씀.

 “인자 그만 혀야 쓰것고만. 책을 많이 읽어야 혀, 요새 신식 나오는 책도 중요허지만 고담책(古談冊)을 많이 읽어야 혀. 고러면 상여소리 낼 수 있는 문구가 다 나와요. 지금은 고담책 다 없어져버렸어. 그런 책을 찾을려면 하늘의 별따기여. 나도 여기 도서관에 한번씩 가지만 가급적이면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요.”

 글·사진=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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