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전주무형문화유산원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국립전주무형문화유산원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박혜경
  • 승인 2014.10.20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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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비-비 올 확률 80%, 가끔 비-비 올 확률 50%, 어쩌다 비-비 올 확률 20%. 기상청은 170여억 원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하여 비 올 확률과 강수량예측을 수치로 계산하여 보도하고 있다. 놀라워라. 노랑 샛노랑 연노랑 분홍 진분홍 빨강 회색 연회색 진회색 등은 표준색상표로 도표화 되어 있어서 원하는 색을 골라 정확하게 지정할 수 있다. 놀라워라. 그러나 노리끼리 누리끼리 놀작놀작 푸르딩딩 푸르스름은 색은 분명하나 색보다는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이 충만하여 수치로 표현하기 불가능하다. 색감이기 때문이리라.

 감정은 수치화할 수 없고 보여줄 수도 없는 무형이다. 기쁨과 슬픔 희열 등 간절한 감정은 생의 의미를 가일층 부여하지만 이것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내 몸을, 마음을 거쳐 지나갈 뿐 갈무리하고자 하나 담을 수 없는 무형이다. 무형이 형상을 한 몸을 적시기도 하고 메마르게도 하고 고통스럽게도 한다.

    나의 기억들 또한 기뻤고 열망했고 때로 회한의 부끄러움으로 혼자서도 얼굴을 붉힐 일들이 많건만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나는 가을날 하오의 햇살을 받아내는 초로의 질그릇. 『토지』의 박경리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고 시로 일별했으나, 세상에 버리고 가지 못하는 영롱하고 귀한 것들, 그 소중함을 갈무리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이음매의 역할을 하고자 전주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문화재청 소속기관으로 지난 10월 1일 개원한 국립무형문화유산원이다.

 보이는 것은 형상이 무너지면 가뭇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손에서 손으로 기술을 전해 길고 긴 생명을 이어왔다. 무형문화유산원은 그 무형의 문화유산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보존 전승하는 일을 한다.

 국립무형문화유산원의 개관 기념행사로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처용무 종묘제례악 등이 공연되었고 시각예술로서 미술품이 기획전시 되었으며 17개국 24편의 영상물과 영화가 상영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 호로 지정된 만신 김금화의 서해안풍어제 배연신굿을 관람했다. 원래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 굿을 하는 틀을 가졌지만, 이번 행사에서 보여준 것은 공연의 형태로 짜여진 1시간 반짜리 축약본이었다.

 전통악기와 뱃사람들의 뱃노래, 무용의 성격인 춤사위와 사설은 공연예술로도 훌륭한 볼거리였다. 이번 김금화 만신의 굿은 연희자의 무대와 관람자의 경계가 없어 실제 굿에 가까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굿의 가장 중요한 기능적 부분인 기원과 해원의 의미를 시각화해서 전달하는 것은 공연물로 연출된 제한적인 상황에선 불가능해 보였다.

 중요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의 공연이 실제 제례가 아닐시 그러할 것이고 양주별산대놀이 남사당놀이등도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져 공연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훼손되고 있음이 안타깝지만 한 시절 한 세대가 지남으로 또 다른 의미의 가치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전승과정 중 합해지고 나눠지고 필요치 않으면 희미해지고 흩어지는 것이 무형문화의 운명이다. 세대를 거쳐 세대를 잇고 누대에 걸쳐서 전해지는 그 과정이 존재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으니 기능을 가진 보유자가 후계자를 지정하고 전승하는 과정을 국가에서 적극 보조하고 가치를 부여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아우르고 빛을 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립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형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형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슬픈 것은 존재 자체가 부존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형상을 한 것들은 언젠가는 형상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무형의 유산은 수 천 년 건너 전해지고 새롭게 빛을 받을 때 더욱 영롱해진다.

    그예 물을 건너간 사람 그리워 공후를 타며 노래 불렀던 여인의 슬픔은 여전히 강물 위에 어리어 있고 달에게 내 남자의 머리 위를 비춰 달라는 정읍사의 노래는 먼 길 떠난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들의 바람을 담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공후인가를 채록하고 정읍사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이 노래들은 허공에 흩어졌을 것이다.

 무형의 노래가 천년을 지나 전해졌음에 감사하며 국립무형문화유산원의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가을 달밤에 비낀 구름을 바라본다.

    달하 노피곰 돋으시어 먼 곳에 있는 내 님의 머리 위를 부디 환하게 비추어주세요.

 박혜경<전주 서신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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