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 김효정
  • 승인 2014.10.20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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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26.

 출간 된지 34년이 지났지만 20세기 최고의 추리소설(?)을 꼽자면 아마도 이 책이지 않을까 싶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명작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소설가가 아닌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였던 그가 쓴 첫 소설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그 안에 담긴 방대한 지식의 총합은 더욱 놀랍다. 앞서 우스갯소리처럼 추리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추리적 기법에 종교와 과학의 두 상반된 분야를 아우르는 이 책은 어떤 장르라 못박을 수 없는 듯하다.

 이야기는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파헤치고자 윌리엄수사가 그를 수행하는 아드소와 함께 그곳에 파견되면서 시작된다.

 그 살인사건은 <묵시록>의 예언대로 벌어지고 복잡한 수도원의 구조와, 인간들의 여러 관계들이 얽히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게다가 사건의 열쇠를 쥔 책이 그들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만 마침내 미궁을 꿰뚫는 거대한 암호를 풀어낸 윌리엄은 어둠 속에서 수도원을 지배하는 광신의 정체를 응시하게 된다.

 소설의 큰 줄기는 살인사건이지만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과 인간 내면의 추악한 속살들이 깔려있다.

 당시 교황과 황제 사이의 세속권을 둘러싼 다툼과 교황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이의 청빈 논쟁, 제국과 교황에 양다리를 걸치려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입장, 수도원과 도시 사이에 흐르는 갈등 등 ‘종교’라는 허울아래 감춰진 비뚤어진 욕망으로 점철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신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탐욕을 채우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소설의 본문만으로도 충분히 방대하지만 주석 또한 만만치 않다. 단순히 책의 하단에 몇 줄 적혀 있는 여타의 주석이 아닌 당당히(?) 하나의 온전한 정보들로 몇 페이지씩 차지하고 있는 주석들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 주석 안에 박혀 있는 지식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필히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서 1980년 처음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윤기가 영문판을 번역해 1986년에 초판이 출간됐다. 그리고 2009년에 5판이 발행되었으니 식지 않는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보다 늦은 1990년에 출간한 일본에서는 <장미의 이름>에 관한 해설서만도 10여권이나 출간됐다고 하니 이 책은 여전히 많은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영화는 1986년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출, 숀 코너리와 크리스찬 슬레이터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사실 원작이 너무 방대하고 촘촘하기 때문에 영화는 그에 한참 못미치지만 중세 수도원의 모습이 아날로그 방식의 영화 분위기와 어우러져 오히려 더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 그리고 나이 들어 더 멋있는 배우 숀 코너리와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파릇파릇한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 그러나 원작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원작 읽기에 먼저 꼭 도전해 보길 바란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관이나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한 가치관이나 신념들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고 인간은 완성되어 간다. 그러나 그 신념들이 모두 ‘나’에게로만 향한다면 그것은 오만과 독선이 되어 버린다. 소설 속, 극단적 청빈의 삶을 실행하던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궁지로 몰아 넣으려는 세력들은 왜곡된 신념으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 결과는 다툼과 분열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의 소멸로 귀결된다. 중세시대의 그러한 풍경들은 지금도 변함없다. 오래된 소설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 작품이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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