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능함이 나라를 망친다
정부의 무능함이 나라를 망친다
  • 전정희
  • 승인 2014.10.19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7년 전력산업의 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력 신기술 제도가 도입되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전력기술이나 외국에서 도입하여 개량한 기술에 대해 신규성, 진보성, 현장적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술에 대해 산업부 장관이 신기술로 지정?고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98건의 전력 신기술이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신기술은 약 20여 건에 불과하다. 지난 5년간 활용실적을 살펴보니, 전체 공사발주 39만7천건 중 한전이 발주한 공사가 36만6,700건으로 99.9%를 차지하였다. 다시 말해 한전이 전력 신기술을 배전공사에 거의 100%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전이 거의 100% 공사에 활용하고 있는 전력 신기술을 한전 사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전기협회가 전력 신기술 지정심사전담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기협회 직원과 한전 직원이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기술심사를 하면서 현장실사가 빠진 주관적 정성평가를 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자의적으로 새로운 기술이며, 진보성이 있고, 현장에서 활용할만하다는 서술형 평가 몇 마디면 전력 신기술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허술하게 지정된 전력 신기술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었을 리 없다. 2001년 전력 신기술 10호로 지정된 ‘전선이선 공법’은 22,900V의 전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전선교체작업을 하는 기술로 작업 위험도가 매우 높아 전기원들의 감전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지난 10년간 송배전공사를 하다가 감전사고를 당한 사상자가 약 600명. 이 가운데 약 60% 이상이 전력 신기술로 공사를 하다 감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전과 기술업체는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지난 10년간 한전은 전력 신기술 10호를 배전공사에 적용한 결과 약 781억원이 공사원가를 절감했고, 이 기술을 개발한 개발업체는 기술사용료로 466억원을 챙겼다. 이렇게 한전과 개발업체가 취한 이익은 고스란히 공사협력업체의 손실로 이어졌다. 기존의 공법보다 공사단가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13일 산업부 국정감사에 전력 신기술 제도의 총체적 부실 문제를 지적하자, 산업부 장관은 실효성이 없고 민원이 많아 전력신기술 지정제도를 폐지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황당하고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전력신기술 제도 운용을 잘못하여 수백 명의 전기원 노동자들이 감전사고를 당하고, 배전공사업체에 수백억원의 손실을 가져다 줬음에도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폐지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장관의 이런 답변을 들으면서 문뜩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해경이 제때 구출을 하지 못해 3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습대책이 해경을 없애버린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한결같이 제도를 잘못 운용한 정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는가. 무책임한 정부가 이런 식으로 면죄부를 받는다면 우리 사회는 정부의 무능 때문에 대형사고와 국민들의 피해가 잇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정희<국회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