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수풍마을 귀농인가족들의 마을사람되기
임실 수풍마을 귀농인가족들의 마을사람되기
  • 고길섶
  • 승인 2014.10.15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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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현장 사람들을 보다 6.

임실군 청웅면 수풍마을 주민들은 마을정원 가꾸기 교육을 통해 귀농인들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귀농해서 살다보면 힘들고 지칠 때도 많다. 임실군 청웅면의 수풍마을에 사는 귀농인가족 여섯가구 사람들, 그들도 그러했나 보다. 귀농 2-5년차 되는 그들, 서로 잘 알지도 못해 그들끼리도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지 못했다. 귀농인 부부들은 서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고통을 공감하고 싶어 했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남편 따라 온 여성들 중엔 “내가 왜 이 생활을 해야 하나”라며 고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단다. 귀농인을 환영하는 마을도 있지만 이 마을은 좀체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도 않으니 선주민들과의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적어도 작년 초반까지는 그랬던 모양이다.

 한국원예심리치료협회 임실분소를 운영하는 박미 선생은 자신도 귀농한 처지인지라 귀농인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 귀농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년에 수풍마을 귀농자가족들을 대상으로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에 해당하는 열악한 주거환경이었다. 살아갈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땅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2013년 1차년도 사업에서는 귀농가족들을 주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교육 목표는 마을 귀농인들의 공동체적 삶과 선주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농자재를 쌓아둔 곳에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치우지 않고 주민들이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로 이용된 웃마을 모정 옆 공터를 정원으로 가꾸고 그네와 야외 테이블을 제작하여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는 등 선주민들과 귀농인들의 소통공간을 창출하였다. 또한 순천국제정원박람회에 견학을 하며 귀농인과 주민을 한 조로 짝을 지어 연로한 어르신을 도와주도록 한 것이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마침내 마을 주민들이 귀농인들에게 집터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8개월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 정도의 성과를 얻어냈다면, 수풍마을에 어색하게 존재했던 선주민-귀농인 관계가 서로의 이해와 공감, 소통을 통해 마음을 여는 긍정적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2014년 2차년도는 귀농인이 더 이상 귀농인으로서가 아니라 마을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나가도록 하기 위해 마을 선주민들의 활동을 중심과제로 설정하였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자청한 요구로 마을공동정원 가꾸기를 진행하고 있다.

 애초 계획은 각자의 집에 화단을 조성하도록 했었으나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얼굴인 회관 앞을 새롭게 조성하자고 했다. 지저분하게 쌓인 쓰레기더미 청소를 깔끔히 하고 마을회관 앞 마을 입구 도로변에 폐타이어를 이용해 국화 화단을 설치하였다. 국화 화단은 마을의 공간 분위기를 화사하게 창출하였다. 벽화 그리기를 통하여, 벽화를 어디에 어떻게 그릴 것인지 주민들이 자유롭게 자기생각들을 이야기하였다. 벽화가 주민들 생각대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박미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제도 자신들이 정하는 것에 행복해 하셨죠. 벽면 밑색으로 흰색만 칠해도 마을이 살아 보인다며 행복해 하며 즐거워하시곤 했고, 채색에 너도나도 참여했죠.”

 수풍마을의 교육 프로그램은 마을의 사회적 자본의 구축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 마을공동체가 근본부터 해체되는 오늘날에 있어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은 마을 구성원들의 상호 신뢰, 협동, 정서적 연대 등의 힘이 바탕이 되는 마을의 사회적 자본의 재형성에서부터 시작될 일이다. 특히 청년층 가족이 부재화되면서 마을 재생산의 위기가 초래된 오늘날 귀농인들의 존재는 소중한 일이며, 실제로 마을 활력의 주체가 된다. 수억원을 지원하는 여타의 사업보다도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은 마을 살리기에 매우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귀농인들의 마을사람되기에 주목하면서 주민들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 사람보는 시각이나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져가고 ‘너네가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는 태도에서 탈피해 협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도시것’들이 촌구석에 내려와 사는 게 안쓰럽다거나 교육에 참여하며 ‘행복하고만’과 같은 말들을 툭툭 던지는 할머니들의 인지상정, 이런 것들이 변화의 징후들이다. 마을 공공적인 일에 함께 참여하며 새롭게 경험하는 데서 오는 삶의 기쁨이 꽃피고 있다.

 
글·사진=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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